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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천체 관측 기구 ‘혼개통헌의’가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천체 관측 기구인 ‘혼개통헌의’을 보물 제2032호로 지정했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 의기(儀器, 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 표현한 천문 관측 도구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제작 사례이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는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의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실학자 유금(柳琴, 1741~1788)이 조선식으로 해석해 1787년(정조 11년)에 만든 과학 기구로서, 이 유물은 1930년대 일본인 토기야(磨谷)가 대구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2007년 고(故) 전상운 교수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된 문화재다.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母體板)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星座板)’으로 구성되었다. 모체판 앞뒷면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실명미상)을 위해 만들다(乾隆 丁未 爲約菴 尹先生製)’라는 명문과 더불어 ‘유씨금(柳氏琴)’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어 유금이 약암(約菴)이라는 호를 쓴 윤선생을 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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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窺衡)’, 별의 고도(위치)를 확인하는 ‘정시척(定時尺)’도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아 있다.
모체판은 앞면 중심에 하늘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곽을 24등분하여 맨 위에 시계방향으로 시각(時刻)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南回歸線), 적도(赤道), 북회귀선(北回歸線)의 동심원, 위쪽에 지평좌표원(地坪座標圓)을 새겼다.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黃道) 상의 춘분점(春分點)과 동지점(冬至點)을 연결하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黃道圓)을 한판으로 제작했으며, 특정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돌출시킨 지성침(指星針)이 11개가 있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북극출지 38도(北極出地三十八度)’란 위도를 새겼으며 이는 곧 서울(한양)의 위도 36.5도에 해당한다.
모체판과 성좌판에는 북극성, 직녀자리, 견우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뱀주인자리, 안드로메다(Andromeda), 오리온(Orion), 페가수스(Pegasus) 등 계절별 주요 별자리가 표시되었으며, 그밖에 알파드(Alphard, 바다뱀자리의 가장 밝은 별), 프로시온(Procyon, 작은개자리에 속한 별) 등 우리나라 하늘에서 주로 관측되는 별자리 사이에 있는 작은 별들의 위치도 표시했을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되었다. 이는 유금의 ‘혼개통헌의’가 중국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조선식 천문시계를 만들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혼개통헌의’는 서양의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자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다. 또한,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 있어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과학 문화재로서 보물로 지정해 그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김경희 기자 lululal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