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 중독자의 안식년 '딱 1년만 쉬겠습니다'

기사입력 2019.05.04 13:18
  •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1년 안식년을 드립니다."
    - 인사부 드림

    어느 날 갑자기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위와 같은 메일을 받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보통의 직장인에게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누군가의 장난이 아닐까' 의심부터 할 것이다. 인사부의 메일이 실제상황이라면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그동안 못 했던 것들 다 해야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하고 기뻐하는 경우와 '1년간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하지'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는 경우.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 요즘 직장인들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며 일상의 행복을 추구한다. 잘 쉬어야 업무 효율도 높아지는데, 일에만 빠져있는 '워크홀릭' 쪽은 아닌가.

    신간 '딱 1년만 쉬겠습니다'는 일벌레 저승사자가 1년간 쉬면서 쓴 일기이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꼭 1년을 쉬는 게 아니더라도 이 책을 통해 인생에 '쉼표'를 찍고 일 외적인 내 삶을 돌아보자.

  • '딱 1년만 쉬겠습니다' 표지
    ▲ '딱 1년만 쉬겠습니다' 표지
    글·그림 브라이언 리아 | 번역 전지운 | 책밥상 | 17,500원

    경쟁 사회 대한민국에 필요한 쉼표 같은 이야기

    야근 필수, 휴일 반납 같은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휴가는 어떤 의미일까? 게다가 1년 휴가라니. 하루하루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감생심, 가능하기나 할까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저 남달리 한가한 마음을 가진 소수나, 1년을 쉬어도 먹고 사는 일에 문제없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 이를 테면 안식년이 있는 교수나 잘 나가는 프리랜서 등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저승사자도 매초 두 명씩 죽는 전 세계 사람을 맞이해야 하는 직업이라, 휴가 한 번 심지어 병가 한 번 쓰지 못한 소위 ‘일벌레’다. 그러니 인사부에서 강제로 통보 받은 ‘1년 휴가’ 앞에서 저승사자는 망연자실할 밖에. 그 긴 시간 동안 일을 안 하면 대체 뭘 하지? 어디를 가지? 여행이라고는 분명 멀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망자를 데려오느라 다녀온 출장이 고작일 뿐이니 말이다.

    쳇바퀴 돌 듯 지내는 일상, 늘 탈출하고 싶지만 막상 ‘하루’라도 시간이 주어지면 난감하다. 쉬어본적이 없기에 무엇을 할지 몰라, 어영부영, 뒹굴뒹굴, 어정어정, 그렇게 허무하게 하루를 쓰고 만다. 1년이라고 다를까? 여기, 일만 했던 저승사자는 그래도 야무지다. 안식년을 위한 첫 행보를 일기 쓰기로 시작한다. 1년 동안 보낸 추억을 기록하여 이후에도 언제든 돌아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의 ‘명부’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작성한다. 일출 보기, 산책 등 소소한 것부터 놀이동산, 여행, 패러세일링, 심지어는 온라인 데이트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그러고 나니, 1년을 지낼 길이 보인다. 그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는 것을.

    죽어가는 것과 다름없이, 일만 하던 그는 긴 휴식의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시작한다. 새로운 경험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함께’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심지어 인간에 점점 동화되기까지 하는데 놀 때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인간의 전유물인 죄책감까지 느끼는 것은 물론, 과음으로 인해 다음 날 일정까지 빼먹는 등 죽음 세계의 저승사자가 아닌 ‘인간’ 속에서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지게 된다. 이렇게 안식년을 보낼수록 저승사자는 점점 ‘살아가는 일’에 적응하게 되고, 존재의 의미를 사색하고, 배움을 생각하고, 의미 있게 사는 것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1년이 지나 회사로 돌아온 그는 축제에서 상으로 얻은 금붕어와 여행지에서 모은 스노우볼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그는 이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일’만이 아니라 일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또 여러 사람을 만나 타인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에 있다고 깨닫는다. 생명이 있는 금붕어를 기르고 스노우볼에 담긴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제 그는 일터에만 콕 박힌 ‘죽음’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노력을 하기로 결심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하는 우리들이지만 ‘쉼’은 왜 필요한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저승사자가 보낸 쉼의 1년을 들여다보면서 각자 던져보게 되는 질문이다.

    그림책, 어른에게 주는 ‘휴식’

    연필 스케치 같은 편안하고도 세련된 그림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이 책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이미지가 큰 비중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형식이지, 어린이들에게만 한정된 장르는 아니다. 간혹 글보다 사진 한 장, 그림 하나가 큰 울림을 주듯이 그림책은 적은 말로 더 많은 감동과 해석을 주기도 한다. 저승사자가 1년 휴가를 가게 되는 계기부터 휴가를 다녀올 때까지의 12개월이 작가의 간결한 그림으로 펼쳐진다. 한 장 한 장 저승사자가 무엇을 하는지 글이 없어도 정확히 인지되는 그림은 ‘만약 내가 1년 휴가를 가게 되면?’이라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한다.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의도, 거기에 읽는 독자들의 경험이 더해져 각각의 텍스트를 생성하는 열린 이야기, 그게 바로 그림책이 갖는 매력이다. 이 책은 그런 그림책의 특성을 백분 활용해 자신만의 ‘쉼’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한다. 1년 휴가가 요원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들고 하루만 쉬어보면 좋겠다. 아마도 그 다음 행동을 옮길 용기가 생길지도! 또 일벌레, 상사에게 슬그머니 선물로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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