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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는 ‘판본체’, 명성황후는 ‘흘림체’…조선 시대 한글 서체 변천사

기사입력 2019.04.25 11:40
  • 조선 시대 한글 서체는 어떻게 변했을까? 세종대왕 탄신 622돌을 맞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한글 서체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기획전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을 개최한다. 조선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시기별 대표 유물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세종대왕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30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사진=문화재청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사진=문화재청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틀 속에서 동일한 두께와 각진 획을 가진 조선 전기 한글 서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당시 일반적인 필기도구인 붓으로는 쉽게 쓰기 어려운 기하학적인 모양의 이 서체는 필기보다는 인쇄를 전제한 것으로 흔히 판본체(板本體) 혹은 판각체(板刻體)라고 부른다.

  •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사진=문화재청
    ▲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사진=문화재청

    조기 중기 한글 서체의 특징은 보물 제1947호 ‘숙명신한첩’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글 서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궁체(宮體)를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조선 초기 판본이나 활자의 기본 형태에 붓으로 쓴 느낌이 가미된 것으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전형(典型)이 만들어지게 된다. 궁체는 주로 왕실의 필사본 서적에서 빼어난 모습을 볼 수 있고, 붓의 꺾임과 부드러운 흐름을 조화롭게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명성황후 한글 간찰(明成皇后諺簡) /문화재청
    ▲ 명성황후 한글 간찰(明成皇后諺簡) /문화재청

    한글 서체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국문학의 융성으로 필사가 늘어나던 영·정조대를 거치며 정제되었고, 이후 순조부터 고종 대에 이르기까지 전성기를 맞이한다. 순조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의 글씨와 명성황후의 편지글은 조선 왕실의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들이다. 이 밖에도 사대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궁체로 거침없이 쓴 글, 그리고 민간에서 베껴 쓴 필사본 소설들에서 획의 변화와 강하고 약한 기운이 교차하는 선들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전시를 찾는 사람들이 조선 시대 한글 서체의 원류를 찾아보고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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