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는 죽었다

기사입력 2019.04.05 10:12
  • 작년 방송가와 서점가에 가장 주목을 받은 철학자가 있다. JTBC의 최고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 독서 토론회에는 그의 저서가, '너의 인생부터 사랑하라'는 김연자의 히트곡 아모레 파티는 그의 사상이, 그리고 그의 어록을 담은 서적은 인문학 서적 톱10을 기록했다. 학창시절 '신은 죽었다'라는 언급으로 뇌리에 남았던 인물, 바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다. 

    1847년에 태어나 1900년에 사망한 그는 삐뚤어진 근대 모더니즘에서 탈피하여, 다양성과 탈권위주의, 무엇보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중요시한 실존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에 엄청난 영향력을 남긴 철학자다. 덕분에 20세기를 연 철학자, 망치를 든 철학자 등 다양한 별명이 붙여져 있다.

  • 니체 / 사진 = 위키피디아
    ▲ 니체 / 사진 = 위키피디아

    모더니즘의 상징, 근현대의 한국 술

    니체가 탈피하려고 한 모더니즘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합리의 철학이다. 한때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끈 사상이었지만, 이러한 좋았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버린다. 합리를 추구하며 효율만 생각하다 보니 노동자를 상품이나 기계처럼 취급했고, 인류에 좋은 유전자를 남겨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 아래 우생학이라는 삐뚤어진 학문도 만들어 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체와 객체 이분법으로 나누면서 우열을 가렸고, 이러한 우열을 세상의 진리를 하나로 통합시켰다. 문제는 진리에 따르지 않거나 속하지 않는 부류에는 억압 및 탄압이 따라가는 폭력으로 변해버렸다는 것. 그 결과 인류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및 제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의 술 문화도 이러한 근대 모더니즘과 유사한 모습이 있다. 술의 본질을 오직 마시고 취하는 것이라고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외국의 주류는 고급 술, 우리의 술은 저급 술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적용되었으며, 먹을 쌀로 술을 빚으면 법을 어긴다는 폭력적인 상황도 있었다. 집안에서 대대로 빚어온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담은 술은 깡그리 무시가 되었다.

    이러한 사상 속에서 최고의 가성비로 저렴하게 취할 수 있는 제품이 속속 등장한다. 소주는 우리 농산물로 만들어 증류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들면 되었고, 막걸리는 수입 밀가루로 만들면 충분했다. 그리고 맥주는 그저 시원하고 탄산감이 좋으면 충분했다. 삐뚤어진 진리 아래 합리주의와 이성론이 결합했으며, 이렇게 한국의 술 문화는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진실을 외면한 채 획일적으로 변모해간다.

    폭탄주의 본격적인 등장

    싸게 많이 빨리 취하는 것이 인식은 고도 성장기와 맞물려 더욱 성장한다. 빠른 성장을 추구했던 만큼 빨리 취할수 있는 폭탄주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스키에 맥주, 소주에 맥주 등을 섞은 술들은 과음을 늘 유발했고, 이러한 현상은 음주에 대해 더욱 나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폭력, 알코올 중독, 음주운전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강압적인 술 문화, 벌칙으로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나쁜 술 문화가 한자리를 차지한다. 체질적으로 알코올 해독 능력이 없어도 마셔야 했으며, 못 마시면 술도 못 마신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결국 한국의 술 문화에는 권위를 필두로 한 권위와 규칙, 강압과 폭력이 함께 했던 것이다.

    권위를 깨는 술의 반격

    모더니즘이 순수 이성과 합리론이라면, 그 반대는 포스트 모더니즘. 바로 근대의 권위와 규칙을 깨트리며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철학이다.

    현대 미술, 철학, 다인종, 다변화 등이 여기에 적용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려는 문화다. 그리고 술에도 포스트 모더니즘과 같은 사상이 적용된다. 바로 1970년 대 미국에서 시작한 크래프트 맥주다. 독일의 맥주 순수령에 맞춰 획일화된 맥주에 반기를 든 이 운동은 벨기에 및 수도원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맥주를 모티브 삼아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맥주뿐만이 아닌 와인과 한국의 술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와인으로'란 철학 아래 다시 태어난 내추럴 와인부터, 10년 전 지역 막걸리 붐을 시작으로, 틀에 얽매이지 않은 기법의 전통주 등이 이러한 획일적인 주류 시장을 깨트려가고 있다. 대자본이라는 권위, 규칙, 규율, 통제,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며 인간 본연의 창의적인 모습 속에 내 고장, 내가 사는 곳이라는 로컬 문화를 추구하는 것,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현대 철학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폭탄주는 죽었다

    한국의 음주문화에 있어서 가장 권위적이었던 부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내리는 하사주와 같은 부분이다. 무조건 마셔야 했고, 거부하면 후환이 있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러한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그것은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개개인의 인격과 생각, 그리고 다양성이 중시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한 니체. 그는 진짜로 신이 죽었다기보다는 신에게만 의지하는 자율적이지 않은 인간을 비판했고, 반대로 인간 스스로 생을 긍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를 권고했다. 결국, 지금의 변화하는 술 문화를 본다면 니체가 원하는 주체적 인간이 많아지는 현상.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폭탄주 문화를 거부해가는 한국의 모습. '폭탄주는 죽었다'는 것은 바로 권위주의가 사라지는 변화의 바람에 던지고 싶은 한마디이다.

  • 폭탄주는 죽었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일본 릿쿄(立教) 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0년 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털사이트에 제공했다.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2년 이상 진행하였다. 최근에는 O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술의 역사 강연을 진행하였으며. '명욱의 동네 술 이야기' 블로그도 운영 중이다. 현재는 SBS 팟캐스트 말술남녀와 KBS 제1 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에서 '불금의 교양학'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이며, 숙명여자대학교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과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에서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