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술 산업 분석 시리즈 제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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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맥주 시장이 위기다. 1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인구의 감소, 하이볼 및 탄산 알코올 등 RTD 드링크의 대두, 그리고 알코올 자체를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요 맥주 제조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맥주 계열 음료(맥주, 발포주 등 유사 맥주 포함)의 과세는 2.6%가 감소했다. 이는 세금으로만 따지면 1986년도로 되돌아간 수치다. 현재 일본 시장 시장점유율은 아사히 맥주가 39%, 기린 맥주가 32%, 산토리 맥주가 16% 정도 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대표적인 업체들은 이렇게 축소되는 시장에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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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맥주, 가정 내 맥주 소비를 또 다른 시장으로. 맥주 서버 렌털 사업 시작
기업의 회식 문화가 줄어드는 일본 역시 가정 내 맥주 수요는 나름대로 지켜지고 있다. 이에 기린 맥주는 가정 내 생맥주 서버 렌털 사업을 시작한다. 월 6,900엔을 지불하면 자신이 원하는 맥주를 2번 이상 받으며 밖에서 즐기는 생맥주를 그대로 마실 수 있다. 이는 집에서 마시지만 마치 전문점에서 즐기는 듯한 생맥주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결국 밖의 수요를 안으로 가져온 것이며, 가정 내 즐기는 맥주 소비를 한 차원 높고 새로운 시장으로 가져온 것이다. 현재 이 서버는 1만 6천 명이나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수기 렌털 사업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페일 에일, 바이젠, 라거 등 다양한 맥주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이지만 획일적으로 만들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며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 내고 있다. -
산토리 맥주, 회사에서 즐기는 맥주?
무알코올 맥주는 원래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못 마시는 경우에 고육지책으로 마시던 음료였다. 그래서 무알코올 맥주는 일본 내 골프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제품이 이제는 페트병에 들어가서 회사에서도 즐길 수 있는 무알코올 맥주가 되었다. 기존 캔에 들어있는 무알코올 맥주는 누가 봐도 맥주 같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즐길 수 없었다. 이에 산토리 맥주는 마치 생수병과 같은 디자인으로 편하게 회사에서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전철에서도, 산책 다니면서도 심지어 출근 중에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디자인으로 기획되었다.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발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든 것이다. -
와인처럼 천천히 음미하는 맥주 시장을 만들어라. 7%의 레몬그라스를 품은 프리미엄 맥주
아사히 맥주는 올해 1월에 알코올 도수 7%의 고도주 맥주를 출시했다. 이는 어차피 맥주 소비가 줄어드니 고도주의 맥주를 천천히 음미하는 시장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기존의 맥주는 천천히 마시면 온도도 올라가고 좋은 향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오히려 천천히 마시면 나름의 향을 낸다.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일본 맥주와는 달리 레몬그라스가 들어 있다는 것. 유럽의 다양한 맥주가 들어오면서 보리, 맥아, 홉 외에 다른 재료가 들어가도 주세법상 맥아 비율이 50%만 넘으면 이제는 맥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전에는 67.7%) 맥주에 보리, 맥아, 홉만 따지는 시대는 이제는 저문 것이다. -
이도 저도 아닌 시장은 사라져가고 있어
앞에서 기린 맥주의 맥주 홈서버 렌털, 산토리 맥주의 페트병 무알코올 맥주, 아사히 맥주의 고도주 맥주를 일례로 소개했지만, 실은 비슷한 전략을 가진 업체들이 많다. 산토리 맥주 역시 8%의 고도주 맥주를 출시했으며, 가정용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가택에서 즐기는 휴대용 맥주 서버도 같이 판매한다. 기린 맥주는 전국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맥주에 지역성을 넣기 위해 공장 별로 다른 이름을 넣어 판매한다. 예를 들어 고베의 공장에서는 고베 기린 맥주, 요코하마는 요코하마 기린 맥주가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로 따지면 장수 막걸리 공장이 영등포와 성수동 등에 있는데 각각 공장마다 다른 제품이 나오는 것과 같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나가노의 크래프트 맥주 업체인 야후 부루잉에 투자를 하기도 하며, 스프링 벨리 브루어리(Spring Valley Brewery)라는 수제 맥주 브루어리 및 펍을 시부야에 열기도 했다. 아사히 맥주도 도쿄 스미다가와 브루어리란 크래프트 맥주 사업을 시작했다.
결국 기존의 시장으로는 맥주 소비의 저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시장이 다양해지는 이유다. 신기한 것은 맥주 소비량이 증가하는 영역은 프리미엄과 저가(발포주 등)이라는 것. 중간 가격대에 위치한 제품이 제일 소비가 많이 줄고 있다. 이유는 개성 있는 소비를 추구하거나, 아예 저렴한 것을 추구하는 시장만 남아 가고 있다는 것. 이도 저도 아닌 것은 결국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급 제품은 수입 맥주가 가져가고, 저렴한 기타주류맥주(발포주라고 불리는 제품 등)만 나오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현실이다. -
명욱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일본 릿쿄(立教)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일본 나스닥 재팬 상장기업에서 아시아 투자담당을 맡았었다. 10년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탈사이트에 제공하면서 본격적인 주류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가수겸 배우 김창완 씨와 SBS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2년 이상 진행했으며, 본격 술 팟캐스트 '말술남녀'에도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O tvN의 어쩌다어른에서 술의 역사 강연을 진행했다. 명욱의 동네술 이야기 블로그도 운영중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다.
-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명욱 mw@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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