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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삼시 세끼’? 예전에는 ‘조석 두 끼’가 기본이었다

기사입력 2018.04.06 10:49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요즘 사람들은 삼시 세끼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예전에는 하루 두 끼가 일반적이었다. 식사를 아침과 저녁을 뜻하는 ‘조석(朝夕)’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일 2식의 관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고려 중기의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고려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하루 두 끼의 관례는 고려 시대에 이미 정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시대에도 하루 두 끼가 일반적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저녁에 5홉을 먹으니 하루에 한 되를 먹는다’라고 기록했다.

    물론 조선 시대의 모든 이가 1일 2식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은 하루 한 끼조차 먹기 힘들었던 반면, 일부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하루에 무려 일곱 차례의 끼니를 먹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요즘 사람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흰죽 먹는 것을 조반이라 하고, 한낮에 배불리 먹는 것을 점심이라 한다. 부유하거나 귀한 집에서는 하루에 일곱 차례 먹는데, 술과 고기가 넉넉하고 진수성찬이 가득하니 하루에 소비하는 것으로 100명을 먹일 수 있다’라고 기록하며, ‘옛날 하증처럼 집집마다 사치하니 민생이 어찌 곤궁하지 않겠는가? 매우 탄식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삼시 세끼를 챙기게 된 걸까?

    점심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 기록인 태종실록(1406년)에는 ‘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태종이 관아에서 먹던 점심을 폐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때의 ‘점심’은 지금과 같은 한 끼 식사가 아닌 가벼운 간식이었다. 하루에 다섯 끼에서 일곱 끼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진 조선 왕의 식사도 기본이 되는 조석(朝夕) 수라에 수차례의 간식을 포함한 것으로 진정한 1일 3식의 개념은 아니었다.

    19세기 학자 이규경이 지은 백과사전 형식의 책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2월부터 8월까지 7개월 동안은 하루 세 끼를 먹고, 9월부터 다음 해 정월까지 5개월 동안은 하루 두 끼를 먹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힘을 많이 써야 하는 농사철에는 지금처럼 삼시 세끼를 챙겨 체력을 보충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계절에는 원래대로 두 끼를 먹었다는 얘기다. 모내기 등으로 바쁜 농번기에는 새참까지 합해 하루 다섯 끼를 먹었다고도 한다.

    학자들은 사람들이 하루 세끼, 특히 점심을 아침저녁과 같은 비중으로 여기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시 세끼는 산업화로 인해 출퇴근 문화가 생기며, 하루 세 끼를 먹기 알맞게 노동 패턴이 변해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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