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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vs. 영화] The 33

기사입력 2017.11.24 15:27
  •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 코피아포 인근의 산호세 구리 광산에서 일하던 33명의 광부가 700m 땅속에 매몰됐다. 광산 중간에서 일어난 붕괴 사고로 갱도는 물론 단 하나뿐인 출구도 막혀버린 것이다.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지만, 칠레 정부는 구조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8월 22일, 모두 죽었을 것이라 여기고 있던 매몰 광부들에게서 생존을 알리는 쪽지가 전해졌다. 사고 발생 17일 만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 광부들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높이의 두 배에 달하는 깊은 땅속은 평균 기온 32℃, 습도 95%의 열악한 환경이었고, 그들이 모여있던 비좁은 임시대피소에는 성인 10명이 먹을 수 있는 48시간분의 비상식량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죽음이 코앞인 극한 상황에서 성인 남자 33명이 큰 마찰 없이 2주 넘게 살아있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결성한 희망연대 덕분이었다.

    매몰 광부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정하고, 조를 짜서 일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려 노력했다. 다수결로 의견을 조정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구출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며 힘든 시간을 견딘 광부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세계 각지에서 그들의 구출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매몰 69일째인 10월 13일, 다방면으로 벌어진 구출 작전으로 33명의 광부가 전원 구조되며 믿기 힘든 현실 드라마는 일단락되었다.

  • 사진=영화 '33' 스틸컷
    ▲ 사진=영화 '33' 스틸컷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칠레 광부들의 생환기는 구조대 자격으로 현장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미국 저널리스트 조나단 프랭클린에 의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칠레 대통령을 비롯해 구조대원, 기술자, 가족, 구출된 광부 등 120여 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된 ‘The 33’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한다. 매몰 사고가 일어난 날 광부들의 출근길 사연부터 외부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17일의 이야기, 구출 작전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 구출을 위해 벌인 다양한 활동,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발생했던 갈등과 위기, 구출 후의 이야기까지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한 책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칠레 광부들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2015년 동명의 영화 ‘The 33’으로 제작되었다. 광부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영화는 적당한 감동과 적당한 재미를 보장한다. 희망 스토리에 너무 치중하는 바람에 매몰 광부들이 받았을 고통과 절망을 엿보기 힘든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 펼쳐지는 칠레 북부 사막의 환상적인 풍경처럼 영화가 펼쳐놓는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 사진=영화 '33' 스틸컷
    ▲ 사진=영화 '33' 스틸컷
    ‘The 33’은 책과 영화가 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드라마가 강조된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현장감을 높여주는 책은 한층 생생한 감동을 전달한다. 하지만 책이나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삶은 전혀 예측할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은 모두가 서로 돕고, 이해하며, 보듬어 나갈 때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이 기적 같은 실화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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