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발생

기사입력 2017.11.03 11:10
  • 1929년 11월 6일자 동아일보. 광주학생 항일운동 당시의 격문을 다룬 내용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 1929년 11월 6일자 동아일보. 광주학생 항일운동 당시의 격문을 다룬 내용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광주학생운동'은 광주 시내에서 일본 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하는 사건을 발단으로 일어난 학생 운동이다. 

    광주학생운동의 발단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나주역에서 한국인 여학생을 일본인 학생들이 희롱한 데 격분한 한국인 학생 30명과 일본인 학생 50명이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다.

    1929년 11월 3일, 또다시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국인 학생이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들에게 테러를 당하면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장재성의 주도로 학생들은 광주농고 학생들은 "용감히 적(일제)을 물리치자"는 내용의 행진가를 부르는 가두시위를 했다.

    이후 11월 12일 광주지역 학생 대시위운동을 거쳐 호남지역 일대를 시작으로 서울까지 확산되었다. 12월에는 경성과 평양, 함경도 등지와 같은 국내 지역과 만주벌에 위치한 간도 등으로 확산되었고 이듬해 3월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광주학생운동은 모두 194개 학교에서 학생 5만4천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발전했다.

    11월 3일이 '학생의 날'로 지정된 것은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고, 또한 그 날의 의미를 담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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