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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vs.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기사입력 2017.05.19 15:58
  •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으로,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 보게 되는 세상’이라는 설정으로 인간 본성을 파헤치며 삶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 어느 도시에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며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전염병이 퍼진다.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남자를 시작으로, 남자를 도와준 또 다른 남자, 그의 아내, 의사까지 연달아 눈이 멀어 버린 것이다. 정부는 혼란을 막기 위해 눈이 먼 사람들을 모아 수용소에 격리한다.

    눈먼 사람들이 모인 수용소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눈이 먼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어져 건물 곳곳에는 배설물이 쌓여간다. 식량, 의약품 등의 지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혹시 모를 탈출을 막기에만 급급할 뿐 누구 하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수용소는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사람들의 이기심은 극에 달하게 된다. 결국, 수용소에는 폭력에 의한 지배계급이 생겨나 모두를 위협하게 된다.

  • 사진=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
    ▲ 사진=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
    눈먼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을 지켜보는 것은 자신도 눈이 먼 척 위장해 남편을 따라온 의사의 아내다. 모두가 눈이 먼 세계에서 홀로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저주나 다름없다. 권력과 폭력에 둘러싸인 세상을 구하기엔 너무나 무력한 개인이 지켜보기엔 이 모든 것이 너무 처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의 아내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폭력에 대항하며, 소수일지언정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끝까지 이끌어나간다. 그녀가 보여주는 인간다움은 처참한 도시에 한줄기 구원의 빛을 찾게 해준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그녀가 남긴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라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사진=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
    ▲ 사진=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2008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영화 제작 소식이 알려지며 돌풍이라고 할 정도로 소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영화는 소설에 비해 가볍다. 참담하고 불편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여전하지만, 쉼표와 마침표만 반복하며 끊임없이 디스토피아를 펼쳐놓는 소설보단 분명 견딜만하다. 인물간의 감정이나 사건의 전개가 소설만큼 매끄럽지는 않지만 두 시간으로 축약되고 순화된 영화의 메시지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텍스트가 전해주는 극한의 피곤함을 소화할 자신이 없다면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힘들지만 꼭 한번은 볼만한 ‘눈먼 자들의 도시’. 사라마구 특유의 디테일과 날 선 비판을 생생하게 맛보고 싶다면 소설을, 더 편하게 그 메시지만 확인해도 좋다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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