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잘 익은 과실향이 가득… 자연을 담은 호주의 와인

기사입력 2017.12.07 10:18
와인으로 떠나는 세계 와인&미식여행
#01 호주편
  • 호주 면적은 무려 대한민국의 50배 크기에 달한다. 하지만 인구는 3천만이 채 되지 않는다. 청정자연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서는 전세계 와인 중 약 4% 정도가 생산 된다. 이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바로 뒤를 잇는 수치다.
  • 레드클리프 전경(사진출처: 호주정부관광청)
    ▲ 레드클리프 전경(사진출처: 호주정부관광청)
    호주의 와인 역사는 영국인의 점령과 함께 시작됐다. ‘호주 와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버스비(James Busby)가 유럽에서 가져온 600여종의 포도나무를 심는 것으로 시작,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은 남호주 전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가정내 소비용 와인이 재배적이었지만 19세기부터는 본격적인 상업용 와인 양조가 시작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호주의 와인산업은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한다. 호주의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이러한 노력에서 온 최첨단 와인 양조기술을 바탕으로 호주 와인은 오늘날 미국, 영국 등의 와인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 높은 품질을 인정받으며 명성을 쌓고 있다.

    호주에서는 샤르도네, 까베르네 소비뇽, 리슬링 등의 국제품종을 비롯해 쉬라즈와 같이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다양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유럽에서 건너 온 품종들도 호주의 자연과 함께 자라며 떼루아에서 기인한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와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프랑스 론(Rhone)의 시라(Syrah)서 온 쉬라즈(Shiraz)로, 잘 익은 과실향과 독특한 스파이시함이 베어 있는 와인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광활한 땅의 면적과 다양한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보다 포도 재배에 적합한 지역은 많지 않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씨로 인해 포도가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드니에 인접한 헌터밸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명한 와인 생산지역은 호주 남동부와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 캥거루가 뛰어다니는 디킨 에스테이트 포도원의 풍경
    ▲ 캥거루가 뛰어다니는 디킨 에스테이트 포도원의 풍경

    청정 호주의 깨끗한 강물이 생명력을 불어넣다. 디킨 에스테이트

    호주의 유명 와인 평론가 제임스 할리데이가 ‘포도의 특징과 품질을 잘 살려 우수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너리’로 평가한 바 있는 디킨 에스테이트는 빅토리아주 북서쪽 레드 클리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긴 여름과 온화한 겨울을 지나는 곳으로 풍미가 깊고 과즙이 풍부한 포도를 생산해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전 호주 국무총리인 알프레드 디킨은 이 땅의 가치를 알아봤다. 1880년대 캘리포니아 농업 전문가인 차페이(Chaffey) 형제를 불러들여 이 지역을 우수한 포도 재배 경영의 모델이 되는 포도원으로 탈바꿈 시켰고, 그 이후 레드클리프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모두 ‘디킨의 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알프레드 디킨의 영예를 기리기 위해 1967년 설립된 디킨 에스테이트는 부분적 뿌리 건조(partial root zone drying) 기술과 캐노피 관리(canopy management), 포도밭 모니터링 시스템 등 차별적이고 혁신적인 포도 경영 기술을 선보이며 레드클리프 와인 제조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또, 이윤을 앞세워 과도한 포도 생산을 하기 보다 자연친화적인 포도 재배 기술과 지속가능한 포도밭 경영으로 환경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전 세계 30여개국에 와인을 수출하고 있는 디킨 에스테이트는 350헥타르에 달하는 포도원에서 연간 1200만 리터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 중 품질을 인정받은 20%의 와인만이 ‘디킨 에스테이트’의 이름을 수여받는다. 와이너리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진 와인은 합리적인 가격대로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와인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는 물론 와인 애호가까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와인과 함께하는 피쉬앤칩스

    와인과 마찬가지로 호주의 식문화 역시 영국 식민지였던 과거와 깊은 연관이 있다. 대구, 가자미 등의 흰 살 생선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기름옷을 입히고 기름에 튀겨내 소금이나 식초를 뿌리고, 막대모양의 감자튀김과 함께 곁들여 먹는 피쉬앤칩스는 사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처음 감자를 본 유럽인들은 땅 속에서 빠르게 수십개의 열매를 맺는 감자를 악마의 식물로 여겼고, 여기에 더해 18세기 초 감자가 한센병을 일으킨다는 괴소문으로 인해 가난한 하층민들 조차도 감자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감자를 취한 곳은 바로 아일랜드로, 타 유럽국에 비해 가난했던 이 나라에서는 흉작을 넘기게 해 준 귀중한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시간이 흘러 영국 역시 흉작이 반복되며 빵을 먹지 못하게 되자 그동안 멀리하던 감자를 찾았다. 18세기 말 동유럽 이민자의 가게에서 생선과 함께 감자를 튀겨낸 음식을 팔기 시작했고, 칼로리가 높은 튀김 요리는 노동자들에게 인기를 끌며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로 전해졌다.

    영국의 피쉬앤칩스, 그리고 호주의 피쉬엔칩스는 어떻게 다를까? 대부분 대구살로 만드는 영국의 피쉬앤칩스는 생선의 결을 따라 뚝뚝 끊어지는 반면, 호주의 피쉬앤칩스는 호주 북부 연안의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에서 주로 서식하는 ‘바라문디(Barramundi)’라는 생선으로 만들어져 살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호주 원주민의 말로 ‘비늘이 큰 생선’이라는 뜻을 가진 바라문디는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세계 음식 재료 1001>에도 소개된 바 있는 맛있는 생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피쉬앤칩스는 영국보다 호주에서 더 맛있는 음식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 피쉬앤칩스와 디킨 에스테이트의 와인들
    ▲ 피쉬앤칩스와 디킨 에스테이트의 와인들
    반짝이는 호주를 먹고 마시다. 호주와인과 함께하는 피쉬앤칩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진지하게 공부를 한 것보다 신나게 논 기억이 더 선명하다. 20대 초반에는 언어를 배운다는 핑계로 영국 남부의 작은 마을 이스트본(Eastbourne)에서 근 일 년을 보냈다. 소문 그대로 영국 날씨는 굉장했다. 일주일 동안 비가 단 1분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려 도대체 언제 빨래를 해야 할지 무척 당황했던 순간도 있었으니. 다행히도 가끔은 영국다움을 상실해 비타민 D 결핍을 면할 수 있었다. 쨍한 여름, 따사로운 햇볕이 있는 날에는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비키니를 입고 오곤 했다. 시험을 보건, 숙제가 있건 수업은 그저 만남의 장소였을 뿐. 학교에서 해변까지는 도보로 10분, 끝나자마자 해변가에서 가벼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따사로운 여름을 만끽했다. 몇 시간씩 이어지던 물놀이 후 배가 출출해지면 피쉬앤칩스를 자주 먹었다.

    피쉬앤칩스는 대구나 가자미 등 흰살생선과 감자를 튀긴 요리다. 영국은 물론이며 미국과 호주 등 영국 출신의 이주자들이 있는 곳에서 모두 즐겨 먹는다. 비빔밥이나 김치만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듯 피쉬엔칩스도 각국마다 맛에 차이가 있다. 영국의 피쉬앤칩스는 대부분 뚝뚝 끊어지는 질감이 있는 대구를 사용하지만 호주에서는 주로 다금바리로 만든다. 덕분에 호주식 피쉬앤칩스는 살점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조금 더 촉촉하고 부드럽다. 영국의 해변보다 더 화창하고 밝은 분위기 또한 맛에 한 몫 한다.

    영국에서는 피쉬앤칩스를 맥주와 함께 먹었지만, 호주식의 피쉬앤칩스는 어쩐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짝을 맞추어야 진정한 마리아주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모스카토 품종으로 만든 가벼운 와인이라면 디저트보다 이렇게 약간 소금기가 있는 음식과 함께 매칭하는 것을 더 즐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추앙하는 맛의 공감대, “단짠”의 조화는 늘 훌륭하니까. 모스카토 품종으로 만들어낸 약발포성의 와인이라면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가 유명하다. 물론 호주의 모스카토는 그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호주식 모스카토는 이탈리아 다스티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보다 훨씬 더 발랄하고 과실향이 충만하며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도수도 일반적으로 조금 더 높다. 디킨 에스테이트 모스카토는 약 7%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마시기 편한 와인이다. 당도를 잘 받쳐주는 탄탄한 산도 덕에 전반적인 밸런스도 좋다. 2016년 빈티지는 제팬 와인 챌린지(Japan Wine Challenge)에서 은메달을, 2014년 빈티지는 제임스 할리데이(James Halliday)로부터 87점을 받아 이미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았다. 아삭아삭한 청사과의 상쾌함, 민트, 달콤한 열대 과일의 기분 좋은 아로마, 상쾌한 산도까지. 음식의 맛을 돋워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피쉬앤칩스는 물론이며 브런치, 피크닉에도 모두 잘 어울릴 와인이다. 스크류캡으로 마감이 되어있어 열고 닫기가 용이해 야외에서 즐기기에도 좋다. 피쉬앤칩스처럼 간단한 튀김 안주와 와인 한 병만 있다면 내 눈앞에 당장 푸른 바다가 보일 것만 같다.
  • /양진원 와인21 와인전문기자 (lego8099@naver.com)
    와인21닷컴의 와인전문기자이며 프리랜서로 와인과 요리에 대한 강의와 다양한 기고 활동 중이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학교 폴 보퀴즈에서 먹고 마시고 공부하며 와인과 놀기 시작했다. 또한 부르고뉴에서 ‘한국 와인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라는 논문으로 국제 와인 무역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수많은 현장 경험을 통해 와인과 음식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체득하여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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