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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월 16일, 주민 500여 명이 죽은 '미라이 학살' 사건

기사입력 2017.03.16 10:11
  •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학살의 피해자를 위한 무덤 / 사진=https://www.travelfish.org(Son my museum)
    ▲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학살의 피해자를 위한 무덤 / 사진=https://www.travelfish.org(Son my museum)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My Lai)에서 미군이 무고한 민간인 500여 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발생 아침, 미 제11보병여단 소속 찰리 중대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색출할 목적으로 말라이에 진입했으나 적군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미군들은 가옥을 수색하여 주민들을 마을 한가운데로 몰아 세우고 어린이와 부녀자, 노인 등 가리지 않고 총격을 가해 학살했다. 또한 이중 도망치는 여성과 아이들을 추격해 사살했다.

    너무나 끔찍했던 이 학살 사건은 헬리콥터 조종사 허그 톰슨 준위에 의해 중단됐다. 정찰비행 중이던 톰슨 준위는 어린이와 노인, 여성 등 비무장 민간인이 죽어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상급부대에 보고했다. 이후 톰슨 준위는 생존해 있던 어린이 서너 명을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이 사건은 군부에서 은폐하려 했지만, 1969년 사진기자 로널드 해벌이 찍은 학살 사진과 프리랜서 기자 시모어 허시에 의해 학살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은폐됐던 사건은 의회와 국방부 조사에 의해 사실로 드러났다. 학살 사건 관련자 장교 14명 중 현장 지휘관이었던 소대장 윌리엄 캘리 소위만 민간인 학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가택연금으로 감형했고, 3년 뒤에는 형벌이 해제됐다. 학살 사건을 보고하고 생존자를 구출한 톰슨 준위 외 2명은 사건 발생 30년이 지난 1998년 훈장을 받아 공로를 치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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