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조선의 이색 유배] 풀 뽑는 노역에 시달렸던 네덜란드인 ‘하멜’

기사입력 2017.03.10 13:32
  • 조선의 유배형은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에서 유배생활을 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이 있다. ‘하멜표류기’는 서양에 조선을 알린 최초의 기행문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하멜이 조선에 감금된 13년 간의 임금을 회사에 요구하기 위해 상세히 작성한 보고서로 조선에서의 유배생활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담겨 있다.

  •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이었던 23살의 네덜란드 청년 ‘헨드릭 하멜(Hamel, H.)’은 효종 4년(1653년) 풍랑에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에 표착한다. 처음 하멜 일행은 비교적 후한 대접을 받았지만, 일행 중 일부의 탈출 시도가 발각된 후 한양에 압송된다. 일행은 효종에게 고향에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하지만 ‘조선에 표착한 외국인은 결코 본국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조선의 국법을 이유로 거절당한다.

    대포, 조총 등의 무기 기술자 등이 포함되어 있던 하멜 일행은 이후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매달 70말의 쌀과 옷 등 임금을 받고 살게 된다. 이들은 조선인임을 인정하는 호패까지 발급받지만, 사실상 조선 땅에 감금된 터라 고향에 가기 위한 탈출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일행 중 몇 명이 효종 6년(1655년) 일으킨 청나라 사신에게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길 호소한 사건으로, 하멜 일행은 효종 7년(1656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된다.

    전라병영성에 유배된 하멜 일행은 각종 잡역에 동원되었고, 병영성과 장터의 풀을 뽑는 잡역에 동원된 하멜은 “오늘도 마당의 풀을 뽑았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이들의 노역 강도는 감독관에 따라 달라졌는데, 하멜표류기에는 ‘어떤 이는 몸이 벌거숭이가 될 정도로 심한 노역을 요구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무역품의 일부인 사슴 가죽을 돌려주고 장거리 여행을 허락하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는 내용과 ‘무료로 제공되던 장작이 끊어져 직접 나무를 해야 했다’, ‘얻을 수 있는 음식이 쌀밖에 없어 고생했다’는 등 유배생활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멜 일행은 조선에 도착한 지 13년 만인 현종 7년(1666년)에 일본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승선했던 63명의 하멜 일행 중 고국으로 돌아간 이는 겨우 16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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