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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vs. 영화] 인페르노

기사입력 2017.03.03 09:06
  • 2013년 출간된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는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로스트 심벌’로 이어지는 로버트 랭던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소설은 ‘세계 인구의 반을 희생해서라도 진화된 인류를 남기겠다’는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의 음모로 시작된다. ‘인구 폭발로 인해 조만간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 믿는 조브리스트가 세계 인구의 절반을 줄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개발해, 그것을 세상에 퍼트리기 위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것이다.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즉, ‘위기의 시대에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는 ‘신곡-지옥(Inferno)’ 편의 메시지를 신봉하는 그는 단테의 지옥을 묘사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에 수수께끼 같은 단서만 남긴 채 죽고 만다.

  • 한편 로버트 랭던은 최근 이틀간의 기억을 잃은 채 피렌체의 병원에서 눈을 뜬다.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알 수 없는 세력에게 공격을 받은 그는 담당 의사 시에나와 병원을 탈출하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가 가진 단서라고는 재킷 속에서 찾은 의문의 실린더에 담긴 단테의 ‘지옥의 지도’뿐. 지옥의 지도에 조작된 암호가 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랭던은 시에나와 암호에 담긴 비밀을 풀어가며 조브리스트의 음모에 맞서게 된다.

    소설은 전작과 다름없이 빠른 진행과 간결한 문체로 스릴 넘치는 추리의 세계를 펼쳐간다. 단기 기억상실이라는 핸디캡이 추가되긴 했지만, 로버트 랭던은 신곡에 숨은 메시지와 암시를 역사, 문학, 과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지식으로 거침없이 풀어낸다. 소설은 통쾌하고 치밀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인류의 진화된 미래를 꿈꾸는 과학자의 의지가 향하는 곳이 천국과 지옥 중 어디일지 생각하게 함으로써 ‘과학적 윤리’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남겨놓는다.

  • 영화 '인페르노' 스틸컷
    ▲ 영화 '인페르노' 스틸컷
    소설 ‘인페르노’는 2016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사실 ‘로버트 랭던’ 시리즈는 매번 영화가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아오긴 했지만, 영화 ‘인페르노’는 그중에서도 정도가 가장 심하다. 원작의 묘미를 실종시킨 각색으로 영화는 7년 만에 로버트 랭던으로 복귀한 톰 행크스의 두툼한 턱살처럼 한없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영화는 톰 행크스의 나이를 의식해서인지 랭던과 시에나의 러브라인을 랭던과 신스키 박사로 바꿔놓았다. 덕분에 원작에서 맛보았던 인물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인물 간의 관계도 한층 평면화되었다. 조브리스트의 숨은 조력자이자 애인인 ‘FS-2080’가 누구인지를 두고 펼쳐지는 심리전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원작과는 전혀 다른 결말도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내용으로 급하게 마무리된다.

    영화는 킬링타임용으로 여전히 볼만하다. 하지만 원작 속 명소 따라잡기에만 급급해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와 단테의 ‘데스마스크’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원작보다 나은 점을 찾을 수 없다.

    역사·문학·과학이 탁월한 서사 속에 녹아있는 댄 브라운의 ‘로버트 랭던’ 시리즈의 묘미는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어설픈 각색으로 밋밋해진 영화보다는 단연코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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