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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vs. 영화] 덕혜옹주

기사입력 2017.02.07 09:12
  • 덕혜옹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옹주라지만, 덕혜옹주는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잊힌 존재였다. 해방 후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이승만 정부는 덕혜옹주를 비롯한 황족들을 철저히 외면했고,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절 사람들은 망국의 황족들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덕혜옹주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2009년 작가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가 출판되면서다. 당시까지만 해도 덕혜옹주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일본인 여성사 연구가인 혼마 아스코가 쓴 ‘덕혜희(德惠姬)’가 덕혜옹주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덕혜옹주의 일대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일본인이 쓴 것이라는 사실에 매우 부끄러웠다고 밝힌 작가 권비영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록보다 그녀의 불운했던 삶을 더욱 많은 사람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소설의 집필 목적을 밝히고 있다.

    역사적 실화에 작가의 상상력을 양념처럼 끼워 넣은 소설은 덕혜옹주의 삶을 오롯이 부활시켰다. 막힘 없이 술술 읽히는 소설은 독자의 가슴에 먹먹한 울림을 남기며 사람들에게 ‘덕혜옹주’의 존재를 알렸고, 이후 뮤지컬, 영화 등으로 변주하며 사람들에게 덕혜옹주를 끊임없이 각인시켰다.

  •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2016년 8월 ‘덕혜옹주’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되었다. 100만 부 이상 팔린 원작의 힘과 10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 손예진, 박해일 등 흥행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는 560만에 가까운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역사에 없는 과도한 설정으로 역사 왜곡의 도를 넘었다는 지탄을 받으며 논란을 일으켰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을 덧입히는 팩션 사극은 논란을 피하기 힘든 장르긴 하다. 소설 ‘덕혜옹주’가 처음 출판되었을 때도 조선 황실을 너무 미화했다는 이유로 역사 왜곡에 대한 논란이 일었었다. 하지만 영화는 좀 지나치다. 소설은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진 사실은 건드리지 않고, 기록으로는 채 알 수 없는 덕혜옹주의 심정과 독백, 숨겨진 이야기들을 채워나갔지만, 영화는 캐릭터 강화와 극적인 전개를 이유로 명백한 사실조차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에 ‘영화의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는 팩션 사극’임을 밝혔다지만, 독립투사로 거듭난 덕혜옹주와 거짓 포장으로 재창조된 대한제국의 허상은 흥행을 위한 노림수인 것만 같아 씁쓸하다.

    단순한 재미로 따지자면 영화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패전 후 일본을 피해자인 양 그린 일본 영화가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억지 춘향으로 만들어진 덕혜옹주 역시 고운 눈으로 보기는 힘들 듯하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기억하고, 역사의 혼란 속에 희생된 한 개인의 운명을 확인하고 싶다면 영화보다는 허구의 MSG가 덜한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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