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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년 전 멈춰진 시간 속으로…뤄양 고건축 여행

기사입력 2016.12.12 11:35
  • 중국 허난성 서쪽에 있는 뤄양(洛阳,낙양)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5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4천년의 건축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곳.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남겨진 고건축물(古建築物)에서 멈춰버린 시간의 흔적을 찾아간다.

    중국 건축의 기본 틀을 세운 한나라 건축부터 이민족의 독특한 색채가 들어간 청나라 건축까지 뤄양 대표 고건축 세 곳을 통해 과거 중국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 중국 최초 사찰인 백마사의 입구.
    ▲ 중국 최초 사찰인 백마사의 입구.

    △ 중국 불교문화의 발원지, 백마사

    최초는 언제나 흥미롭다. 동양문화의 꽃이라 평가받는 불교. 발원지는 인도지만 현재는 동양을 대표하는 종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 계기가 된 중국 불교의 최초 발원지가 바로 백마사(白馬寺)다.

    후한(서기 68년)에 건립된 백마사는 중국에서 최초로 건립된 사찰이다. 서기 67년 한나라 2대 황제 유장(刘庄)은 어느 날 광채가 나는 사람이 등장하는 꿈을 꾼다. 꿈속의 인물이 서쪽의 부처라 판단한 그는 신하에게 불법(佛法)을 찾아오라 명령을 내린다. 황당한 이유로 서역으로 특파된 신하들은 신기하게도 때마침 백마에 불경을 싣고 가던 인도 승려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만난다.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 황제는 이듬해 두 승려의 거처를 위해 사찰을 지었고, 흰말에 불경을 싣고 왔다는 사실을 기리기 위해 백마사라 이름 지었다.

  • 백마사 입구에 있는 백마조각상(좌)과 뤄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백마사 제운탑(우).
    ▲ 백마사 입구에 있는 백마조각상(좌)과 뤄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백마사 제운탑(우).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한나라 이후 수·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중국 불교는 최전성기를 맞는다. 당나라 시대였던 685년, 중국 유일의 여황제인 측천무후는 백마사에 애착을 갖고 직접 증축하라는 어명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한때 3천명의 승려가 거주할 정도로 공전절후의 번영을 누리던 백마사였으나 당나라 말기(755년) '안사의 난'이 발발하면서 전소하게 된다. 이후 송 태종 황제와 명 태조 주원장이 백마사 복원을 위해 칙명까지 내리는 등 불교 보호정책을 펼쳤지만 당 말기부터 일어난 멸불운동의 영향으로 유교에 주도권을 내주고, 현대에 들어서는 문화대혁명까지 겪으면서 쇠퇴일로를 걷는다. 그래도 중국 최초의 가람인 점을 인정한 중국 정부는 1952년부터 백마사를 수복해 1984년 불교도들의 신행 공간으로 내외에 개방했다.

    2천년 동안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한 백마사. 숭엄한 사찰의 분위기는 그 역사마저 속세의 일희일비일 뿐이라고 전해준다.

  • 당나라의 건축양식을 띈 주공묘 입구.
    ▲ 당나라의 건축양식을 띈 주공묘 입구.
    △ 유학의 원성(元聖)이 잠들어 있는 주공묘

    한나라 이후 통일왕조인 수와 당나라를 대표하는 고건축 주공묘(周公庙)는 618년에 건립돼 당시 궁중 건축양식을 띄고 있다. 또한 당 태종과 현종 때 증축과 명나라 시기의 재건축을 통해 명·청의 건물들의 특징도 녹아 있다.

    주공묘 내 현존하는 건물은 종고루(钟鼓楼), 정정당(定鼎堂), 예악당(礼乐堂), 선조당(先祖堂) 등 모두 25채이다. 그중 가장 오래되고, 보존이 완벽한 건물은 정정당으로 요금(遼金) 건축예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이렇듯 다양한 시기의 건축양식이 담긴 묘의 주인공은 주공(周公)이다. 사실 주공은 주나라의 왕을 보좌하는 작위 명으로 여기서 주공은 역사상 1대 주공인 희단(姬旦)을 말한다. '주공해몽(周公解夢)'에 나오는 주공희단은 주나라 개국공신인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정치가이자 군사 전략가였다.

    무왕 사후에는 어린 성왕을 대신해 섭정하기도 했는데, 섭정 동안 봉건제도 시행과 도성 축성, 각종 예법과 운율 정립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이뤘다. 이는 역사상 중국 발전에도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공희단은 사상가이기도 했다. 당시 유학의 기반을 다져 유학의 원성(元聖)이라 불리며, 공자가 생전에 가장 존경했던 인물로 꼽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교문화가 3천년 전 주공희단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니 실로 놀라울 수 밖에 없다.

  • 청나라 건축양식의 산섬회관 입구.
    ▲ 청나라 건축양식의 산섬회관 입구.
    △ 청나라 상인조합의 사랑채, 산섬회관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산섬회관(山陕会馆)이다. 이곳은 비록 3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그 가치는 앞서 언급한 백마사와 주공묘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중국 역사상 가장 독특한 건축양식을 가진 청나라 시대에 건립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마지막 봉건왕조이자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만주족)에 의한 통일왕조였던 청나라. 그중에서도 가장 번성하였던 강희제(康熙帝)와 옹정제(雍正帝) 시대에 건립된 산섬회관은 당시의 건축양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섬회관은 뤄양 인근 산서성과 섬서성에서 성공한 상인들이 각자 돈을 모아서 지은 상인들의 모임 장소였다. 당시 부호들은 이곳에 모여 고향 이야기를 하고, 사업을 토론하며, 정부관리와 선비들에게 접대하였다고 한다. 마치 청나라 시대의 비즈니스 센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산섬회관 유리조벽에 새겨진 섬세한 문양 조각들.
    ▲ 산섬회관 유리조벽에 새겨진 섬세한 문양 조각들.
    축구장 두 개의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산섬회관 내부에는 유리조벽(琉璃照壁,중국에서 문 안에 설치하는 가리개)을 비롯한 산문(山门), 무루(舞楼), 정전(正殿), 배전(拜殿) 등의 고건축물이 있다. 그중 유리조벽은 높이 12m, 넓이 13.2m로 허난성 서부지역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조벽으로 꼽힌다.

    또한 회관 곳곳에 새겨진 조각들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이다. 기왓장, 돌, 나무 등 건축물에 조각이 새겨지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이다. 조각 하나하나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중 백채(白菜,배추) 조각은 재물을 부르는 의미가 있다. 청나라 시대의 대상인들이 믿었던 미신인 백채 조각을 찾아서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 여행TIP

    백마사(白马寺, Báimǎsì, 바이마쓰)
    주소: 허난성 뤄양시 뤄롱구 바이마쓰진 310국도
    (洛阳市洛龙区白马寺镇310国道)
    전화: 86-379-63789090
    사이트: http://www.chinabaimasi.org/ (중문)
    입장료: 50위안
    교통: 56번, 58번 버스 종점 하차

    주공묘(周公庙, zhōu gōng miào, 쥬공먀오)
    주소: 뤄양시 라오청구
    (洛阳市老城区周公庙)
    전화: 86-379-63484882
    입장료: 무료
    교통: 33번 버스 이용

    산섬회관(山陕会馆, shānshǎnhuìguǎn, 산산후이관)
    주소: 뤄양시 지우두 똥루 171
    (洛阳市九都东路171)
    전화: 86-379-63532448
    입장료: 무료
    교통: 57번 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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