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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알비(Albi)'] (1)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의 고향이자 숨은 명소

  • 글=스타일조선 피처 디렉터 고성연
  • 편집=디지틀조선일보 서미영 pepero99@chosun.com
  • 사진=포토그래퍼 안진영
기사입력 2016.12.07 16:10
  • 동화 속 아기자기한 마을처럼 매력적인 알비에는 평온함과 여유가 흐른다.
    ▲ 동화 속 아기자기한 마을처럼 매력적인 알비에는 평온함과 여유가 흐른다.
    티없이 맑고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장밋빛 일색의 벽돌 건물들이 펼쳐져 있고, 호젓한 거리를 걷노라면 이따금 보이는 하늘빛 창문들이 눈길을 잡아끄는 남프랑스 알비(Albi).

  • 알비가 낳은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 Anonyme, ‘Lautrec en Pied Avec saCanne’(1892), ©Muse´eToulouse-Lautrec, Albi, Tarn, France.
    ▲ 알비가 낳은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 Anonyme, ‘Lautrec en Pied Avec saCanne’(1892), ©Muse´eToulouse-Lautrec, Albi, Tarn, France.
    평온하고 정감 넘치는 이 매혹의 도시는 누구보다 외로웠지만 동시에 쾌활하고 정이 넘쳤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시대를 앞서는 혁신을 이뤄냈던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의 고향이자 아직은 덜 알려진 숨은 명소다.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Toulous)에서 자동차로 1시간가량 가면 미디-피레네(Midi-Pyre´ne´es) 지역, 도시 전체에 붉은빛이 감도는 알비(Albi)에 도착한다. 핑크빛이 도는 건축물로 가득한 툴루즈와는 달리 ‘Albi the Red’라고 알려져 있듯 알비의 장밋빛 건물은 저녁이 되면 석양의 그림자에 가려져 더 짙은 빨강으로 물드는 듯하다.

    381km에 이르는 타른 강(Tarn River), 그리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11세기에 지은 고전적인 다리, 마을 곳곳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빨간 벽돌 건물들. 유유자적 거닐다 어느 위치에서 사진을 찍든 동화 속 풍경 같다.


    장밋빛 마을 곳곳에 스며든 ‘파스텔’ 색조의 매력
  • 장밋빛 마을로 불리는 알비의 거리를 돌아다니면 한때 큰 부를 가져다줬던 청색 염료 파스텔의 흔적을 창문에서 볼 수 있다.
    ▲ 장밋빛 마을로 불리는 알비의 거리를 돌아다니면 한때 큰 부를 가져다줬던 청색 염료 파스텔의 흔적을 창문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붉은 벽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은 첫눈에 알비에 반하게 할 만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유럽의 많은 명소가 그렇듯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엄격한 법(알비 시내의 경우 지상 5층 이상의 건물은 불허) 덕분에 유난히 더 높고 푸르게 보이는 걸까. ‘몽마르트르의 화가’, ‘물랭루즈의 화가’, ‘밤의 화가’ 등으로 유명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의 고향이기도 한 이 그림 같은 도시는 그렇게 대조적인 색의 매혹으로 첫인사를 건넸다.

    알고 보니 알비는 색(色)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였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프랑스 남부 지역에는 흔히 프로방스어로 통하는 ‘악시탱(Occitan)’이라는 전통 언어가 존재했는데, 그 언어에 따라 11세기에 알비에 살던 사람들은 성(surname)마다 연관이 있는 특정한 색상을 사용했다고 한다.

    자신의 성에 부합하는 색으로 집 창문을 칠하기도 했기에 창문 색을 보면 어떤 가문 사람들이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거리를 다니다 보면 그 흔적이 살짝 남아 있다. 알비는 특히 파란색과는 더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14세기까지만 해도 대청 잎에서 채취한 청색 염료 ‘파스텔(pastel)’을 생산하고 가공해 ‘풍요의 땅(Land of Plenty)’이라 불릴 정도로 큰 부를 창출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청바지가 흔하디흔한 요즘에야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파스텔 블루는 원료를 얻기 힘들고 공정도 까다로워 굉장히 값비싸게 팔렸다고 한다.

    파스텔에도 여러 종류의 파랑이 있는데, 계급에 따라 다양한 파란색을 사용했다. 예컨대 총명하고 깊고 진한 빛을 띠는 파란색은 오직 왕을 위한 옷감이나 장식에만, 살짝 코럴 초록색이 감도는 파란색은 여왕을 위해서만 쓸 수 있었다. 지금은 쿠션, 스카프 등 수채화 느낌의 푸른 색조를 활용한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몇몇 가게에서 한때 대단한 위용을 뽐냈던 파스텔의 잔재를 엿볼 수 있다.


    ‘느림의 정서’가 감도는 평화롭고 정겨운 곳
  • 외관은 알비특유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지만, 내부는 파리지앵도 반할 만한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부티크 호텔 알키미(Alchimy). 쾌활한 

남매가 운영하는 이 매력적인 호텔의 디자인에 자극받아 알비의 호텔 사이에서 새 단장 열풍이 불고 있다고.
    ▲ 외관은 알비특유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지만, 내부는 파리지앵도 반할 만한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부티크 호텔 알키미(Alchimy). 쾌활한 남매가 운영하는 이 매력적인 호텔의 디자인에 자극받아 알비의 호텔 사이에서 새 단장 열풍이 불고 있다고.
    알비는 요즘 찾기 힘든 ‘느림의 미학’이 흐르는 곳이다. 비교적 작은 면적(44.26km2)과 구불구불한 골목길 덕에 느린 자동차 속도가 한몫을 하는 것일까. 이곳 주민들은 여유를 즐기는 소박한 삶을 추구한다.

    골목 사이사이 마주치는 레스토랑과 상점, 갤러리만 봐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연히 구경하게 된 나딘 그라니에(Nadine Granier) 갤러리도 그러했다. 나이 지긋한 여성이 운영하는 이 갤러리는 와인 저장고를 개조해 아티스트들이 전시를 하고 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는 공간으로 바꿨는데, 소담스러운 정원과 붉은 벽돌 등 알비 건축물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품고 있다.

    툴루즈 로트레크의 이름을 딴 ‘르 로트레크(Le Lautrec)’ 역시 한가로운 분위기와 맛난 남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유서 깊은 레스토랑인데, 인기가 높아진다고 해서 굳이 음식값을 턱없이 올리지 않는다(돼지고기를 사랑하는 육식파라면 이곳에서 부댕(Boudin)이라 불리는 요리를 맛볼 만하다). 파리의 여느 곳 부럽지 않을만큼 ‘시크’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부티크 호텔인 알키미(Alchimy) 호텔에만 가도 정겹게 인사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에는 도시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인심과 정감, 여유가 절로 묻어난다.

  • 알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생-세실 성당.
    ▲ 알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생-세실 성당.
    고향에 대한 알비 사람들의 애착과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는 그들만의 독특하고 풍성한 문화에 대한 뿌듯함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또 12~13세기에는 그리스도교 이단으로 통하는 카타리파(Cathar)가 알비를 중심으로 위세를 떨치기도 했는데, 이들은 이원론(물질을 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신과 대립시키는)과 금욕주의를 지향하고 사유 재산을 부정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절대 권력자인 교황에게 맞섰다. 알비 역사에 정통한 현지인 크리스티앙 리비에르는 “규정화된 체제를 비판하고 지금 시대의 남녀 성에 상관없이 둘 다 투표하도록 권유하던 사회였다”며 “어쩌면 카타리파는 현대사회가추구하는 본바탕을 앞서 이뤄놓은 집단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카타리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십자군에 토벌되는 비극을 맞이했고, 알비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알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생-세실 성당(Cathe´draleSinte-Ce´cile)에 들어가면 불의 지옥에 떨어진 악마의 영혼들을 끌고 가는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거대한 페인팅이 있는데, 아마도 이단자의 최후 모습을 그려낸 듯하다. 성당이라기보다는 외부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처럼 보이는 이 웅장한 고딕풍 건물은 철옹성 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밝은 빛과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여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 글=스타일조선 피처 디렉터 고성연
  • 편집=디지틀조선일보 서미영 pepero99@chosun.com
  • 사진=포토그래퍼 안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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