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하, 유현미 저 | 낮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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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선 활짝 펼쳐 보아야 한다. 쪼그려 세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열심히 쑥갓 꽃을 도화지에 옮기는 할아버지는, 뒤표지의 사진을 그대로 옮긴 그림이다. 사진과 그림이 어떻게 똑같은지, 그러면서도 어떻게 다른 정취를 전달하는지,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렇게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 있을까.
실향민 아버지는 화가인 딸의 권유로 90 넘어 그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성가셨지만 하다 보니 별로 어렵지 않다. ‘이런 것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 원’에서부터 시작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향 가까운 임진강을 화폭에 담기까지, 이 아버지가 그린 작품들과 딸의 일러스트가 절묘하게 합쳐져서 멋진 그림책이 완성됐다.
아버지의 그림은 첫 작품부터 보통 이상의 색감과 대담한 선과 공간 이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보다 더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버지의 말을 딸이 모으고 골라 적었다는 텍스트이다. ‘공작이 온다!/걸음걸이 좀 봐라, 도도하기 짝이 없다./(녀석이 내 손바닥에 올려놓은 과일을 쪼아 먹는 느낌이)꼭 입 맞추는 것 같았어./그런 이상야릇한 느낌은 처음이야.’ 같은 대목은 시가 부럽지 않은 절창이다.
이 아름다운 부녀가 글과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화음이 깊고 높고 먼 울림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다. 아버지의 절절한 향수는 거기에 애틋한 비감을 더해준다. 그림책은 누구든 무엇이든 쓰고 그리고 읽으며 감동받을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해주는 책이다.
| 추천자: 김서정
- 편집= 김정아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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