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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곳에서 월드 시리즈가 열리지 않으리라"
지난 1945년 디트로이트와 월드 시리즈 4차전이 예정되어 있던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 한 남성이 나타났다. 샘 지아니스라는 이름의 사내는 자신이 키우는 염소를 데리고 리글리 필드에 입장했다. 염소를 위해서 표도 두 장이나 샀다. 하지만 염소에게서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구단주가 퇴장을 요구하자 화가 난 그가 시카고 컵스를 향해 저주를 내뱉었다.
"컵스는 이 경기에서 패할 것이고, 더 이상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하지 못할 거야. 당신들이 내 염소를 모욕했으므로 다시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할 줄 알아!(You are going to lose this World Series and you are never going to win another World Series again. You are never going to win a World Series again because you insulted my goat)"
공교롭게도 시카고 컵스는 그 월드 시리즈에서 3승 4패로 우승에 실패하고 만다. 그 후 1984년, 1989년, 2003년, 2007년, 2008년 등 지구 우승을 5번이나 했지만 리그 우승은 1945년이 마지막이었다. 당연히 월드 시리즈에도 1945년 이후 단 한 번도 진출하지 못 했다. 지난 1989년에 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2'가 2015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으로 시카고 컵스를 예상했으나 빗나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시카고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은 1908년이었다. 한국 야구 팬들 사이에서 흔히 대한제국 순종 2년으로 표현되는 해다. 무려 108년 전으로 그야말로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876년 시작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팀이라는 기록도 시카고 컵스의 몫이다.
이 기록은 지난 2003년에 깨질 뻔했었다. 시카고 컵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NLCS)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가며 월드 시리즈 진출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고 6차전에서도 7회까지 3:0으로 앞서가던 상황이었다. 8회초 수비에서 플로리다 말린스 루이스 카스티요의 파울 타구를 좌익수가 잡으려는 순간 관중이 먼저 손을 내미는 바람에 놓치게 되었고 그를 빌미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시카고 컵스는 6차전에 이어 7차전에서도 패해 월드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시련을 꺾어야 했다. 시카고 컵스를 잡고 월드 시리즈에 오른 플로라다는 뉴욕 양키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까지 제패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관중의 방해가 없었고, 그래서 시카고 컵스가 6차전을 따내 월드 시리즈에 올라갔다면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는 시카고 컵스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108년 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시카고 컵스 팬들은 '108년 만에 우승해야 하는 108가지 이유'를 찾으며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기대하고 있다. 야구공의 실밥 수가 108개라는 점과 리글리 필드의 홈플레이트부터 좌우 측 펜스 폴대까지 거리가 108m라는 점, 시카고 컵스 우승을 예언했던 영화 ;백 투 더 퓨처2'의 러닝 타임이 108분이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있다. 다소 허황돼 보이기는 하지만 투수 카일 헨드릭스의 생년월일을 모두 더하면 108이 된다고 한다. 1989년 생인 헨드릭스의 생일은 12월 7일로 89+12+7을 하면 정확히 108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두 팀의 명운이 걸린 2016 월드 시리즈 7차전 선발이 카일 헨드릭스이기도 하다. 믿거나 말거나로 시작된 우연 치고는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결국, 연장 10회까지 이어지는 승부 끝에 시카고 컵스가 클리블랜드를 꺾고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지난 1908년 이후 무려 108년 만이다. 이로써 지긋지긋했던 염소의 저주도 풀리게 됐다. 20016년 11월 2일(현지시간)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였다. 이제 남은 저주는 68년 동안 풀지 못한 클리블랜드의 와후 추장의 저주다.
- 김도광 un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