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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채프먼이 무너졌다. 무려 3점 차의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고 6:3의 스코어를 6:6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염소의 저주에 묶여있던 시카고 컵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빨간 등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무려 108년을 기다려왔건만 한순간에 연기로 사라질지도 모를 지경에 빠졌다. 시카고 컵스는 정녕 이대로 무너지고 말 것인가. 염소의 저주는 올해도 계속될 것인가.
시작은 좋았다. 1승 3패로 벼랑 끝에 몰려있다가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후 2연승한 상승세를 몰아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1회초부터 덱스터 파울러가 선두 타자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지난 107년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던 저주로부터 해방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1 동점이던 4회에는 2점을 앞서갔고 5회에는 2점을 더 추가해 5:1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시카고 컵스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클리블랜드가 2점 차로 따라붙은 것은 5회말이었다. 2사 1루에서 시카고 컵스가 선발 투수 카일 헨드릭스를 존 레스터로 바꾼 다음이었다. 포수 역시 윌슨 콘트레라스에서 데이빗 로스로 교체된 상황이었다. 제이슨 킵니스와 상대하면서 포수 실책에 이어 내야 안타를 맞았고 프란시스코 린도어 타석에서는 투수 폭투가 나왔다. 볼넷 하나와 안타 하나, 포수 실책, 폭투로 무려 2점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았다. 두 점이나 앞서고 있었던 데다 5회 수비에서 교체 투입된 노장 로스가 6회초 공격에서 승부에 쐐기는 박는 듯한 솔로포를 날리기까지 했다. 클리블랜드로서는 절망적이었다. 월드 시리즈에서만 2승을 거두며 철벽투를 과시한 코리 쿨루버와 포스트 시즌 내내 완벽투를 보여주었던 앤드류 밀러까지 무너진 탓이다. 승부의 추는 시카고 컵스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8회말 시카고 컵스에서는 존 레스터 대신 아롤디스 채프먼을 올렸다. 영광의 순간을 채프먼으로 하여금 매듭짓게 하려는 배려였다. 지난 7월 시카고 컵스는 뒷문을 막기 위해 뉴욕 양키스에 유망주 4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채프먼을 데려왔었다. 107년을 괴롭혀왔던 염소의 저주를 끊고 108년 만에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8회말 2사 1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채프먼은 첫 타자 호세 라미레즈에게 내안 안타를 맞았다. 다음 타자 브랜든 가이어에게는 중전 2루타를 맞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1점을 내주기는 했어도 아직 2점을 앞서고 있었고,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남겨두고 있었으며 채프먼이었기에 아직은 괜찮았다. 아니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7번 타자 라자이 데이비스가 채프먼의 98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받아치자 상황이 달라졌다. 데이비스의 타구는 좌측 관중석에 가서 꽂혔다. 월드 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거의 다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시카고 컵스를 절망에 빠트리고, 실의에 빠져 있던 클리블랜드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는 극적인 동점 투런포였다.
이제 두 팀의 사정은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초조해진 팀은 8회까지 뒤지고 있던 클리블랜드가 아니라 8회까지 앞서가다 막판에 동점을 허용한 시카고 컵스였다. 더구나 시카고 컵스는 초 공격인 반면 클리블랜드는 말 공격이었다. 시카고 컵스가 먼저 점수를 뽑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끝내기로 경기가 끝날 수 있었다.
폭우로 잠시 중단되었던 경기는 연장 10회로 들어섰다. 시카고 컵스 선두 타자 카일 슈와버의 안타와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외야 플라이로 맞은 1사 2루에서 클리블랜드는 시카고 컵스 4번 타자 앤소니 리조와의 대결을 고의4구로 피하고 5번 타자 벤 조브리스트를 선택했다. 그러나 조브리스트의 2루타가 터지면서 클리블랜드의 선택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클리블랜드는 6번 타자 에디슨 러셀과의 승부도 피했다. 대신 7번 타자 미겔 몬테로와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몬테로마저 좌전 안타로 리조를 불러들이면서 점수 차는 두 점으로 벌어졌다. 시카고 컵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고 108년 동안 이어져왔던 지긋지긋한 염소의 저주를 푸는 순간이었다. 2016년 11월 3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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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시리즈 7차전> 시카고컵스 vs 클리블랜드
- 김도광 un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