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11월 읽을만한 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기사입력 2016.11.27 02:00
권정민 저 | 보림
  • ‘어린이책’범주 그림책(요즘은 그림책이 모든 연령층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로 규정되는 경향이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작고 약한 것들을 이야기한다는 점일 것이다. 멧돼지는, 인간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몸집과 엄니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서식지가 파괴되니 도시로 내몰리고, 지레 겁먹은 인간들이 총을 들고 쫓으니 공포에 질려 도망 다녀야 하는 멧돼지들. 이 시대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대표적으로 구현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멧돼지를, 단순히 안타까운 시선이나 자연보호 구호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그려낸 독특한 그림책이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이다.

    그림책에는 그다지 흔치 않은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이 책은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는 방법은 바로 인간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쫓겨난 멧돼지들은 히치하이크를 하고,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지고, 뷔페식당을 기웃거린다. 여기까지는 불쌍한 도망자 신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압권은 그 이후. 그들은 수많은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경찰 ‘녀석’들을 그 ‘지능’을 시험해가면서 따돌린 뒤 마침내 ‘조용하고 살기 좋은’ 새 거주지를 발견한다. 그 안의 인간들은 굴삭기에 쫓긴 멧돼지보다 더 황망하게 달아난다! 고층아파트에 자리 잡은 멧돼지 가족이라는 이 통쾌한 결말이 마음에 안 드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독자들에게는 멧돼지들의 새 보금자리를 찾아 주기를 권할 수도 있겠다.

    | 추천자: 김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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