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수전의 묘미는 그 균형이 언제 깨질 것인가 하는 데 있다. 투수가 먼저 지칠 수도 있고 타선이 먼저 터질 수도 있다. 실투 하나에 승부가 갈리기도 하고, 대포 한 방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재미로만 따지면 화끈한 타격전이 한 수 위일지 모르나 긴장감으로 따지면 투수전을 따르지 못한다. 그토록 쉬워 보이던 1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기도 한다.
29일(한국시간)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2016 미국 프로야구(MLB) 월드 시리즈 3차전은 6회까지 0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었다. 1945년 이후 71년 만에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첫 월드 시리즈이기도 했던 이 경기에서 시카고 컵스는 내셔널리그 평균자책 부문 1위 카일 핸드릭스를 선발로 내세웠고 클리블랜드는 조쉬 톰린으로 맞불을 놓았다.
먼저 기회를 잡은 쪽은 클리블랜드였다. 1회 초 클리블랜드는 2번 타자 제이슨 킵니스의 내야 안타에 이어 3번 타자 프란시스코 린도어의 좌전 안타로 1사 1, 3루의 선취 득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앞서 벌어진 1, 2차전에서 선취점을 얻은 팀이 모두 승리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두 팀 모두에게 미칠 선취점의 의미는 상당했다. 시카고 컵스는 실점 위기를 넘겨야 했고, 클리블랜드는 득점 기회를 잡아야 했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마이크 나폴리. 시카고 컵스로서는 실점 위기를 넘기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나폴리를 상대로 핸드릭스의 초구는 스트라이크였다. 나폴리에게 두 번째 공을 던지기에 앞서 핸드릭스가 1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이때 2루로 향하려던 린도어의 중심이 무너졌고 급히 1루로 손을 뻗어보았으나 1루심이 아웃을 선언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시카고 컵스가 급한 불을 끄는 순간이었다.
극적으로 실점 위기를 넘긴 시카고 컵스였지만 반전은 없었다. 2회 벤 조브리스트의 중전 안타와 4회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볼넷, 5회 호르헤 솔레어의 좌전 안타로 선두 타자가 출루했지만 후속타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클리블랜드에게 4회 1사 1, 2루, 5회 1사 만루를 허용했다. 병살로 실점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균형이 깨진 것은 7회였다. 클리블랜드는 선두 타자 로베르토 페레즈의 우전 안타에 이어 타일러 나퀸의 번트로 주자를 득점권에 옮겨 놓았다. 라자이 데이비스 타석 때는 폭투로 페레즈가 3루에 안착할 수 있었고, 데이비스의 볼넷으로 얻은 1사 1, 3루에서 대타 코코 크리스프의 우전 안타로 드디어 첫 득점을 뽑아낼 수 있었다. 시카고 컵스로서는 1루 주자 데이비스를 3루에서 잡아 1실점에 그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시카고 컵스도 7회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대타 제이스 헤이워드가 오른쪽 펜스로 향하는 타구로 3루타를 쳐낸 것. 클리블랜드 우익수 로니 치즌홀이 펜스를 의식해서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못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천금 같은 득점 기회였으나 2사라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바에즈가 유격수 땅볼에 그치면서 동점 기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도 시카고 컵스는 2, 3루의 기회를 잡았다. 동점 또는 역전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2사였고, 바에즈의 방망이는 끝내 터지지 않았다. 이로써 71년 만에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월드 시리즈에서 시카고 컵스는 단 1점을 내지 못하고 클리블랜드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시카고 컵스에게는 너무 잔인한 클리블랜드가 아닐 수 없었다.
-
- ▲ 월드시리즈 3차전 클리블랜드 vs 시카고 컵스
- 김도광 un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