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작 vs. 영화] 터널

기사입력 2016.10.28 18:05
  • 2016년 8월 개봉과 동시에 오피스박스 1위에 등극한 영화 ‘터널’은 관객수 700만 돌파하는 저력을 발휘하며 많은 이들에 호평받은 작품이다.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의 생존기를 그린 이 영화는 그의 구조를 둘러싼 여론의 변화라는 터널 밖 이야기를 곁들이며 일반적인 재난영화보다 훨씬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전달한다.

  • 평범한 자동차 세일즈맨인 정수(하정우 분)는 큰 계약 건이 성사되어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진 터널에 갇히고 만다. 정신을 차린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건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뿐이고, 가진 거라곤 배터리가 78% 남은 휴대폰과 주유소에서 받은 생수 두 병,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정수는 자신이 금방 구조될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여유 있게 구조를 요청하지만, 상황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 구조는 더디게 진행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힘들어지고, 그의 구조를 둘러싼 여론도 점점 변해간다. 과연 정수는 무사히 구조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의 상황은 모두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진한 리얼리티를 전달한다.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진 터널, 정수의 구조보다는 흥미 있는 기삿거리를 찾기에 혈안이 된 기자와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정치인, 다수의 의견이라는 핑계로 줏대 없이 얼굴을 바꾸는 여론 등은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보였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착각하게 만드는 언론과 정계의 유착, 그에 휘둘리는 여론의 변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팽배 등 영화가 꼬집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상은 씁쓸함을 남기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영화 '터널' 스틸컷
    ▲ 영화 '터널' 스틸컷
    영화의 원작은 영화 ‘비스트보이즈’의 원작 소설인 ‘나는 텐프로였다’로 데뷔한 작가 소재원이 쓴 동명 소설 ‘터널’이다. 작가의 미공개 처녀작이었다는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비극적이고,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한층 날이 서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영화보다 훨씬 더 급박한 상황에 내몰린다. 소설의 정수에게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풍구도, 잠시나마 이야기 상대가 되어준 묘령의 여인도, 그녀의 강아지도 없다. 영화의 정수는 아껴먹던 케이크를 훔쳐 먹은 강아지에게 분노하지만, 소설 속 정수는 살기 위한 목적을 남기기 위해 케이크를 먹지 않고 버텨간다. 홀로 여론에 맞서는 정수의 아내 미진의 투쟁 역시 소설이 훨씬 처절하다. 미진을 권력의 부당함에 맞선 잔 다르크로 추앙하던 여론이 한순간에 얼굴을 바꿔 마녀사냥에 나서는 과정은 극단적이지만 꽤나 사실적이고, 영화와는 다른 소설의 결말을 더 현실적이라 느끼게 해준다.

    영화는 터널에 갇힌 정수의 생존 모습에, 소설은 잘못을 숨기려는 권력의 움직임, 여론의 변화, 언론의 비겁함, 대중에 의해 좌우되는 정의의 논리를 설명하는 데 좀 더 집중한다. 소설은 영화에 비해 투박하고 직설적이지만, 문제의식만큼은 영화를 뛰어넘는다. 터널은 영화와 소설 각자의 매력을 갖고 있다. 소소한 재미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와 한층 날 선 풍자와 비판을 담은 소설. 어느 하나도 놓치기 아까운 ‘터널’은 영화와 소설을 모두 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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