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글/김령언 그림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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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서너 살 무렵, 가족 여행을 할 때면 아이의 등쌀에 각지의 공룡 박물관, 전시관, 체험관을 꼭 들렀다. 그럴 때마다 집에는 이런 저런 공룡 모형이 여기 저기 나뒹굴었다. 덕분에 나도‘티라노사우루스’니‘트리케라톱스’ 같은 공룡 이름을 알게는 됐지만 아들이 왜 이렇게 공룡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공룡과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또 한 번 궁금해졌다. 왜 아이들이 자라면 우리 어른들처럼 공룡에서 멀어질까?
목보다 이름이 더 길 것 같은 초식 공룡 ‘목을길게뻗으면구름에이마가닿을락말락해서비오는날몹시불편할만큼목이긴사우르스 미르’는 빙하기 때문에 알들이 더 이상 깨어나지 않아 혼자 지낸다. 형도, 누나도, 친구도 없어서 늘 심심하던 미르는 마을을 벗어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눈사태를 만나고 ‘쥐라나뭐라나 잘남’씨라는 쥐 아줌마와 다른 일곱 마리 쥐와 함께 집을 찾아온다. 도중에 육식 공룡의 거짓말에 속아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야 하지만 미르는 이제 심심하지 않다. 작지만 공룡이 아닌 친구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그래서 공룡에서 멀어지는 것은 그만큼 순수함을 잃고 눈에 보이는, 물질로 가득한 현실에 함몰되는 것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작은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단언하건대 이 작품을 읽는 아이들은 아직도 내가 다 외우지 못한 주인공 미르의 긴 이름을 금방 외울 것이다. 그만큼 맑으니까.
| 추천자: 김영찬
- 편집= 김정아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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