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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긴 데다 위로 넘기게 되어 있는 판형. 형식이 꽤 실험적으로 예사롭지 않아 보이지만, 내용은 예스러울 듯하다. 얌전한 서체의 세로글씨 제목, 포근하고 넉넉한 하얀 여백에 정갈하고 부드러운 단색의 소박한 동네 모습. 딱 세 군데의 옅은 오렌지 색조가 반짝 뜬 눈처럼 표정을 만든다. 이 책은 이렇게, 예스러운 것을 예사롭지 않게, 상큼한 표정과 함께 보여준다.
예스러운 것은 '나의 작은 집'이다. 작가가 작업실로 쓰던 집. ‘어느 날 문득’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이 궁금해진 작가는 집의 과거를 더듬는다. 처음에는 카센터. 그 옛 시절의 흔적은 포니나 코로나 같은 자동차 이름뿐 아니라 ‘카- 센타’, ‘빵구’같은 옛날 용어, 옥상을 둘러싼 가시철망 같은 디테일에서 깨알처럼 쏟아진다. 자질구레한 공구들과 자동차 부품, 심지어 벽에 붙은 자동차 광고 포스터들은 또 어떻고! 꼼꼼한 그림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데, 자칫 독자들을 허우적거리게 할 수도 있는 홍수 같은 디테일들이 너무나 정갈하고 담백하게 정돈되어 있는 화면 구성은 더욱 감탄스럽다.
마치 조그만 흑백사진들이 조르르 붙어 있는 옛날 사진첩을 보는 듯한 이 책은, 그 사진들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이야기도 함께 듣는 것 같다. 카-센타 아저씨의 꿈이, 사진사 아저씨의 예술혼이, 길고양이 할머니의 넉넉한 품이, 모자 가게 청년들의 흥이, 실개천처럼 지즐대며 흘러나온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표정이 바뀌는 이 작은 집은, ‘오랫동안 누구의 집도 아니’었을 때에도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이다. 그 오래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이렇게 포근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며 전해준 작가를 만났으니, 집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만큼 우리도 집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새로운 각성을 하나 얻었다.
| 추천자: 김서정
- 편집= 김정아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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