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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을 호령한 명실상부 최고의 여배우, 전도연의 남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tvN 드라마 ‘굿와이프’는 2016년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칸의 여왕’ 전도연이 11년 만에 복귀하는 작품인 데다 브라운관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유지태, 연기파 배우 김서형, 윤계상 등이 대거 출연 소식을 전해 시작부터 난리였다. ‘다시 볼 수 없는 조합’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시작한 작품이다.
해외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은 흥행 혹은 대참패로 씁쓸한 막을 내린다.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 각색 등이 원인이 되어 리메이크작은 극명한 흥행 기로에 놓이기 쉽다. 고로,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가져갈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지론. 그런 점에서 ‘굿와이프’는 미드 리메이크의 좋은예로 남았다. 원작의 주요 에피소드를 가져오되 한국 정서에 맞게 재해석했고, 캐릭터마다 변주를 줬다. 그리고, 그 중심엔 배우들이 있었다.
‘굿와이프’를 끝내고 인터뷰를 진행한 윤계상은 상대역인 선배 전도연의 이야기를 줄곧 꺼냈다. 8할이 전도연 얘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남자 배우들이 ‘전도연의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의 남자가 됐다. 어떤가”라는 말을 꺼내자 윤계상은 “왜 되고 싶어 하는 지 알겠다”고 답했다. -
“전도연 선배는 감정에 100% 올인하는 분이에요. 하나의 욕심 없이 진짜로 해서 좋았어요. 100% 하기 때문에 상대 배우가 섣불리 덤비면 큰일 나요. 엄청 말려요. 계산해서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배우예요. 어느 정도 내공이 있지 않는 한 계산할 수 없죠.”
‘남과 여’의 공유도 ‘무뢰한’의 김남길도 모두 전도연에게 “많이 배웠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윤계상도 두 배우가 “왜 배웠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가르쳐주진 않으세요. 그냥 진짜라는 말 밖에 못하겠어요. 기가 막히게 몰입 안 하는 것도 아시고, 그걸 싫어하세요. 전도연 선배의 기에 눌리는 것 같았어요. 처음 만났을 땐 귀신이라고 생각했다니까요. 그 정도로 무서워요. 눈을 못 쳐다보겠더라고요. 그런데 호흡을 맞춰보면 딱 변해요. 모든 배우가 매우 연기를 잘해서 이번엔 정말 마음껏 누렸어요.”
국민그룹 god 시절부터 윤계상은 ‘만인의 이상형’으로 통했다. 연기자로 전향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순애보’ 영역을 구축했고 그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드러운 남자의 이미지와 결합하며 작품 속 캐릭터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굿와이프’ 속 서중원도 냉철한 로펌대표이지만, 혜경(전도연)에게만큼은 ‘언제나 내 편’인 친구이자 ‘그녀만을 바라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윤계상은 서중원의 순애보도 전도연의 공으로 돌렸다. -
“전도연 누나가 만들어 준거에요. 중원의 순애보에 중점을 두고, 파고들진 않았어요.” 덕분에 서중원은 어둡지도, 야비하지도 않은 인물이 됐다. 오로지 사랑도 일도 쿨하게 대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실제로 5살 차이인 윤계상과 전도연이 친구라는 설정도 초반의 우려와 달리 말끔하게 잊힐 정도로 두 사람의 케미 또한 훌륭했다.
“원래 설정은 김혜경이 서중원보다 ‘선배’였어요. 그런데 ‘선배’라고 부르면 멜로를 막을 것 같다는 전도연 선배의 의견이 반영돼서 선배인데 이름을 부르는 설정으로 바뀌었어요. 제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은 김혜경을 흔드는 역할이었어요. 혜경과 싸우지도 않고 좋아하는 마음까지만 줬죠. 그래서 6부의 돌발키스가 중원을 더 남자답게 직진한 것처럼 보여준 것 같아요. 순간의 선택이었잖아요.“
“배우 전도연에게는 너 나 할 것 없이 칭찬일색인데 그의 반응은 어떠하냐”고 묻자 윤계상이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특별히 생각은 안 하시는 것 같고요. (칭찬을) 하든 말든 관심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럴 시간에 대본을 더 보고, 올인하세요. 그리고 나이가 적든 많든 다 배우라고 생각하시고, 동료라고 생각하시죠. 연기에 대한 얘기도 절대 안 하고 싫다고 하세요. ‘최고의 여배우’라고 극찬받는 이유가 있죠. 같이 해보니까 알 것 같아요. 서중원과 김혜경의 케미는 전도연 선배가 만들어낸 거예요.” -
- tvN 드라마의 강점은?
대본이 많이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도적인 극을 많이 해서 그런지 뻔하지 않다. 요즘은 영화 스태프들이 드라마를 찍기도 해서 앵글도 매우 좋다. 카메라도 2대씩 돌고 예전과 많이 다른 것 같다. ‘굿와이프’는 A,B팀없이 끝까지 A팀이 다 찍었다. 감독님의 머릿속에 콘티가 다 있었고, 순발력도 뛰어났다. 감독님이 빨리, 잘 찍으셨다.
- ‘굿와이프’는 어른들의 성장을 처음으로 건드린 작품이다. 다른 작품과 차별화된 지점이 있었나.
세련된 멋이 있었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수많은 책임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책임을 지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놓고 복합적인 고민과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런데 사실 그게 다 모순된 거다. 법정도 법의 잣대에 있지만, 법을 어긴 사람들을 승소시키고 불법적으로 증거를 얻지 않나. 좋은 척하지만 결국 범죄를 저지르고, 죄를 면하고자 하는 것들이 지금의 현실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행복’이다. 내가 연기하면서도 헷갈렸고 생각도 많아졌다.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들인 것 같아. 누구나 얘기할 수 없는 걸 건드린 것 같다. 누구도 이태준을, 김혜경을 나쁘다고 욕할 수 없다 모든 것들이 겹쳐져 있는 교집합을 이 작품에서 얘기한 것 같다. 이러한 점들이 우리 드라마의 강점인 것 같다.
- 극중 혜경과 중원의 모습이 불륜을 미화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혼한 스태프들이 ‘혜경과 태준(유지태)처럼 쇼윈도 부부로 살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난 이해 못 하겠더라. 아이가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 아이가 중요하니까. (실제로는 중원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급하게 하진 않을 것 같다. 기다릴 거다. 태준과 이혼하고 정리한 후에 시작하자고 할 것 같다. 나이가 있으니 무책임한 결정은 하지 않을 것 같다.
- ‘발레교습소’(2004)로 데뷔했으니 연기자로는 올해 12년 차다. 그때 생각했던 미래가 있었을 텐데.
섣불렀다. 잘할 줄 알았는데 정말 어려웠다. 지금은 노력해서 쟁취할 수 있는 게 연기라고 생각한다. 연기도 계승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배우에게 보고 배우고 습득돼서 또 다른 후배들에게 계승되는 게 연기인 것 같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멘토 같은 존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계속 봐야지만 알 수 있고, 호흡하면서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다수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많이 나온 질문은 무엇인가.
출신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내가 더 잘하면 그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바꿨다. (가수 출신 연기자의) 선구자가 되고 싶다. 요즘은 다들 정말 잘한다. ’38 사기동대’에서 서인국이 정말 연기를 잘하더라. 전혀 모르는 배우인데 연기를 매우 잘해서 정말 재미있게 봤다. 시간에 맞춰서 본 적은 처음이다. 재미있으니까 찾아보게 되더라. 연기에 레벨이 있다면 서인국은 경력에 비해 다섯 단계를 앞서가는 친구인 것 같다.
- 배우로서 윤계상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는 성장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퇴보하지 않는다. 매 작품 느리게 성장하지만, 한번 배운 것은 잘 안 잊어버린다. 예전에는 겉모습만 인정받으려고 하는 절실함이 컸다면, 지금은 연기가 매우 재미있다. 좋은 배우들과 연기하는 게 눈물 날 정도로 재미있고 완전히 바뀌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아마도 나는 계속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점점 나아질 거라 믿는다. 48~50세가 되면 연기를 잘하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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