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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3할대 타자를 8번 자리에 놓다니. 두 경기 연속 선발에서 제외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타순마저 하위로 내린 이유가 궁금하기만 했다. 김현수가 아직 빅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격 부진을 겪고 있을 때에는 8번으로나마 출전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이었으나, 지금은 처지가 다르다. 볼티모어에서 김현수보다 타율이 높은 타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김현수에게 타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2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고 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8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전한 김현수는 투런홈런 하나를 포함해서 3타수 2안타에 볼넷 2개와 3타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첫 타석에 들어섰던 3회초 김현수는 잘 맞은 타구를 외야로 보냈지만 샌디에이고 중견수 멜빈 업튼 주니어의 호수비에 걸려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그 아쉬움은 다음 타석인 5회초에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무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현수는 샌디에이고 선발 에릭 존슨의 시속 140km짜리 투심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두 점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지난 5월 30일 클리블랜드 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홈런을 신고한지 30일 만의 맛보는 두 번째 손맛이었다.
김현수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6회사 1사 1-2루에서 샌디에이고 두 번째 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의 바깥쪽 슬라이더를 밀어 쳐 좌익 선상에 떨어뜨렸다. 1타점짜리 2루타였고 김현수의 시즌 8번째 2루타였다. 이후 샌디에이고 투수들이 김현수와의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7회와 9회에는 볼넷을 얻어 나가야 했다. 올 시즌 3번째 한 경기 4출루 기록이다.
경기를 마친 후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은 "김현수가 8번 타순에서 생산적인 역할을 해낸 것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오늘 밤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며 김현수의 활약에 흡족해했다. 또한 "김현수가 우리 팀에서 출루율 수위를 기록 중인데, 이미 그가 유력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가끔 기록을 확인할 때 놀라지 않는다. 그는 여러 차례 타석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말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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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수 오늘 성적_3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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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의 피츠버그를 홈으로 불러들인 시애틀의 이대호도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3타수 2안타 1볼넷. 지난 23일 디트로이트 전부터 6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한 이대호는 5회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안타로 포문을 연 후 7회에도 좌전 안타로 멀티히트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다음 타자 카일 시거의 중월 2루타 때 열심히 달려 홈까지 파고들어보았으나 간발의 차이로 아웃당하고 말았다.이대호는 수비에서 에러를 범하기도 했다. 9회초 마지막 수비에서 피츠버그 4번 타자 스탈링 마르테의 4-6-3으로 이어지는 병살성 타구가 나왔지만 유격수의 송구를 이대호가 떨구면서 병살로 연결시키지 못 했다. 다행히 2명의 후속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면서 시애틀이 5:2로 승리했다. 피츠버그의 강정호는 출전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세인트루이스의 오승환은 최근 난조를 보이고 있는 트레버 로젠탈 대신 새로운 마무리로 보직을 임명받았다. 캔자스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오승환은 선발 마이클 와카와 조나단 브록스톤, 케빈 시그리스트에 이어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한국과 일본 마운드를 평정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새로운 끝판왕의 등장이었다.다소 긴장한 듯 첫 타자 크리스티안 콜론에게 볼넷을 내주고, 드류 부테라에게 안타까지 맞아 무사 1-2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휘트 메리필드를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알시데스 에스코바에게 우중간 안타로 1사 만루의 실점 위기를 맞기는 했어도 알렉스 고든을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한데 이어 에릭 호스머까지 유격수 땅볼로 잡으면서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세이브는 올리지 못했어도 큰 발걸음을 위한 작은 한 발을 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뉴욕 양키스와 원정 경기를 치른 텍사스 추신수는 안타를 기록하지는 못했어도 8회에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후 아드리안 벨트레의 안타 때 홈을 밟았다. 이후로 텍사스의 방망이가 폭발하면서 8회초에만 6안타를 집중시켜 무려 5점을 뽑아냈다. 텍사스는 뉴욕 양키스에게 7:1 승리를 거두고 쾌조의 4연승을 달렸다.
한 경기를 쉬고 다시 선발로 나선 미네소타 박병호는 시카고 컵스와 원정 경기를 가진 이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뽑아내지 못 했다. 5경기에서 16타수 무안타(삼진 10개)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에도 4타수 무안타에 삼진만 두 개를 기록한 박병호의 타율은 1할 9푼 1리까지 떨어졌다. 규정 타석을 채운 169명의 타자들 중 단연 최하위 성적이다. 앞으로 박병호에게 주어진 날이 얼마나 될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김도광 un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