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저 | 휴머니스트
-
사물을 보는 한 남자와 사물을 사유하는 한 여자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고규홍. 그는 십수 년 전 나무들이 부르는 소리에 문득 직장을 떨구고 방랑길에 오른 나무 인문학자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감성을 수놓는 김예지. 두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녀는 장애를 뛰어넘어 유감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젊은 피아니스트이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무의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여행에 나섰다. “나무는 무엇인가요?” 고규홍의 물음에 김예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애물이요. 반려견이 안내를 해 주어도 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나뭇가지에 긁혀요.”
이렇듯 나무의 반대편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대학의 교정, 여주의 시골집, 천리포수목원 등을 오가며 백송, 능소화, 은행나무, 느티나무, 치자나무, 자귀나무 등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사유한다.
서른여섯 살에 비로소 나무를 만난 김예지는 느티나무의 이끼와 웅장한 생김새, 기운찬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앙증맞게 나왔다가 넓어지다가 얇게 마르면서 단풍이 드는 잎사귀에 대해서도 자세하다. 시각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해 나무와 소통해 왔던 고규홍은 하루하루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나무에 다가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시각이 자신의 장애였음을 고백한다. 잘 만났다, 슈베르트와 나무.
어느 봄날, 그가 말한다. “모든 생명체에는 오감으로 전해지는 신호가 있어요. 봄 햇살이 따스해지면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드러나요. 청진기를 대보면 사람의 심장에서 맑은 피를 밀어내는 쿵쾅거림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어느 여름날, 그녀가 말한다.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여리게 쳐야 하는 순간 자귀나무꽃의 부드러운 꽃술을 떠올렸어요. 제 음악을 통해 나무의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생생한 이미지가 생겼어요.”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 편집= 김정아 jungya@chosun.com
최신뉴스
이 기사는 외부제공 기사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