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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이야기] 당나라를 떨게 한 고구려의 명장 연개소문

기사입력 2016.05.21 13:51
대륙의 거센 모래폭풍과 대양의 거대한 파도가 연상되는 진짜 사내 연개소문
  • 사진=한국우표포털사이트
    ▲ 사진=한국우표포털사이트

    연개소문(淵蓋蘇文, ?~665?)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임금을 죽인 역적이며, 고구려의 멸망을초래한 장본인으로 기록한 반면,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위대한 혁명가로, 박은식은 [천개소문전]에서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평가했다.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던 조선시대까지 왕을 죽이고 나라를 망친 인물로 평가받았으나, 민족의 자주정신이 요구되던 20세기 자주적인 혁명가로 재인식된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다

    연개소문은 생김새가 씩씩하고 뛰어났으며 수염이 아름다웠다. 또, 의지와 기개가 커서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한다. 남생의 묘지명에는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은 자유(子遊), 아버지 이름은 대조(大祚)이며 모두 막리지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연개소문의 아버지에 대해 남산의 묘지명은 대로(對盧)라고 하였고, 《신당서》는 동부대인(東部大人) 대대로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아버지가 죽자 개소문이 그 자리를 이어받으려 하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여 어렵게 뒤를 이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중에 연개소문의 세력이 강해지자 여러 대인(大人)들이 왕과 상의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연개소문은 이를 미리 알고 자기 부(部)의 군사를 모아 열병(閱兵)을 한다는 구실로 잔치를 베풀어 대신들을 초대한 뒤 모두 죽였는데, 이때 죽은 자가 1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궁궐로 가서 영류왕을 죽이고 대신 왕의 동생인 장(臧)을 새 왕으로 세우니, 그가 바로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寶藏王)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연개소문은 막리지에 오른 뒤 귀족회의가 가지고 있던 병권(兵權)과 인사권(人事權)을 장악하였다. 이때 그가 대장군에 해당하는 대모달(大模達)에 취임했다는 설도 있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연개소문은 이후 어느 시기에 다시 대대로에 취임하였다. 고구려 후기에 대대로는 3년이 기한이며 연임이 가능한 직책이었다. 또한 왕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회의에서 합의로 선출하는 직책이었는데, 귀족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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