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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이야기] 인장이야기(조선왕실의 인장 우표 발행 기념)

기사입력 2016.05.13 13:30
글씨, 그림, 문양 등을 조각하여 인주, 잉크 등을 발라 찍음으로서 객인, 단체를 증명할 수 있는 신물(信物)
  • 사진=한국우표포털사이트
    ▲ 사진=한국우표포털사이트

    인장은 본래 정치에 있어 신빙하게 하는 신물 또는 새절(璽節)의 의미를 가진다. 인장의 역사는 오래되어 일찍이 환인(桓因)이 그 아들 환웅(桓雄)에게 천하를 다스리고 인간세상을 구하게 함에 있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냈다는 단군고사(檀君故事)에서 비롯되고 있다.

    중국 또한 상주시대(商周時代)로부터 신빙의 공구(工具)로 쓰였으며 그 유물이 오늘에 전하는데, 그 명칭은 진(秦) 이전에는 ‘녑(鉩)’이라 하였고 그것이 곧 고대의 ‘사(璽)’자이다.진시황은 옥으로 새를 만들어 옥새(玉璽)라 칭하고 이로부터 후왕(侯王)을 제외한 신민은 사를 인(印)으로 일컫게 되었다. 한(漢) 무제 때 인제(印制)에 크고 작은 것을 규정하여 인과 장의 구별이 생겼으며 , 당나라 무후(武后, 685-704)는 ‘새(璽)’의 음이 ‘사(死)’와 같다 하여 ‘보(寶)’로 일컬었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우리나라의 인장, 전각은 고려시대의 동인(銅印)이 있고, 조선시대의 관인, 사인이 있다. 고려의 인장으로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동인으로 방인(方印), 육각인(六角印), 원인(圓印)이다. 이들의 인문은 판독하기 어려운 것이 많고, 자체는 구첩전(九疊篆)이며 배자(配字)는 방사선식이라 문자는 원주(圓周) 향하여 머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양식의 동인은 대개 봉함인(封緘印)이다.

    이러한 고려인의 유풍은 조선조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조선조의 관인은 모두 모두가 동인 내지 철인으로 상서원(尙瑞院)에서 주조하였으며, 방인이로는 방촌과 3촌, 4촌에 이르고 인문에 있어서는 구첩전과 소전이 그 대부분을 이룬다. 인장의 재료로 금, 은, 동, 철 등 금속은 물론 옥, 마노, 수정, 비취 등의 광물 중에도 인재(印材)가 많이 발굴, 연구되었다.

    이 밖에도 식물류의 인재로는 목인(木印)에 회양목, 배나무 등 결이 고운 것과, 죽인(竹印)에는 죽근(竹根)을 쓴다. 등넝쿨이나 늙은 매화나무 뿌리로서 딱딱한 부분을 골라 그 천연적인 형태를 이용하기도 한다. 동물류 인재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한편 귀중하다는 의미로 상아, 우각(牛角)과 우골(牛骨) 등을 사용한다. 인공제조류의 인재로는 도인(陶印), 자인(瓷印), 소교인(塑膠印), 그리고 화학물질의 발달로 플라스틱 인재가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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