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3월 읽을만한 책] 네모 돼지

기사입력 2016.03.27 00:00
김태호 글, 손령숙 그림 | 창비
  • 학생들의 독서지도를 하면서 많은 아이들이 의무감 으로 책을 읽는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책을 읽어야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고, 나중에라도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무감. 그래서 독서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이 된다.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무감에 의지하는 독서는 힘이 없다. 중학생쯤 되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책 읽으라는 말에서 해방되거나 암묵적으로 독서보다는 공부를 강요받는 순간, 독서는 안 해도 되는 쪽으로 퇴화하고 만다.

    이 책은 우리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동물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람들의 욕심, 무책임과 무관심, 이기심이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상황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그저 도구로만 바라보는 비생명성(「기다려!」, 「고양이를 재활용하는 방법」, 「나는 개」), 인간을 위해 그저 소모되기 위한 존재로서, 처참한 학대 환경에서 사육당하는 동물들(「소풍」, 「네모 돼지」), 독거노인이나 가족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는 우화들(「고양이 국화」, 「어느 날 집에 호랑이가 찾아 왔습니다」). 일곱 편의 동화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특히 표제작 「네모 돼지」는 직접, 자세히 말하는 것보다 그저 담담히 돌려 말하는 것이 더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네모 돼지가 쇠로 만든 상자 틀 속에서 먹고 자기만 하면서 살을 찌우고 죽지 않고 견뎌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간은 돼지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그럴듯한 공포를 준다. 책 읽어주는 돼지와 녹음된 늑대 울음소리가 그것이다.

    아이들에게 적당한 희망과 공포를 주는 사육장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을 떠올리는 건 지나친 비관일까? 독서는 의무감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출발해야 하고 평생을 놀이하듯이 자연스럽게 책을 만나야 한다. 아이들은 책 속에서 즐겁게 누군가를 만나고 그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 생각의 심연으로 빠져들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힘이 있는 독서를 경험하게 해 준다. 그냥 적당한 상상력만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깊고 오랜 울림이 있는 낯섦. 즐거움에서 출발하지만 다 읽고 나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깊이 있는 무게. 그래서 이 동화는 힘이 세다.

    | 추천자: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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