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3월 읽을만한 책] 기다린다는 것

기사입력 2016.03.13 00:00
  •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편리함과 신속함을 선물했지만 대신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많다. 잃어버린 것 중에서도 참으로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을 기다리는 삶일 것이다. 기다림의 능력, 기다림의 습관, 기다림의 즐거움.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제 약속장소에서도 상대방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카톡으로 어디쯤 오는지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미래를 예측하고는 그 예측대로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늘 불안해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우리는 어떠한 응답이 없어도 기다렸고, 응답이 없었다는 기억을 없애는 망각을 통해서 그 기다림을 유지해왔다. 그것은 안으로 품으면서 지우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예상(prospect), 프로젝트(project), 계획(program)과 같이 “앞으로(pro)” 보고(spect) 던지며(ject) 쓰는(gram) 형태로 살아간다. 이렇게 앞으로 쏠리는 삶의 자세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삶을 만들었다. 여기서 미래는 현재에서 상상하는 미래일 뿐 실제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다림은 없다.

    임상철학을 개척한 와시다 기요카즈는 이 책에서 기다림이 인간의 근원적 조건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예감과 기대, 징후, 냉각, 대기, 차단, 교착과 같은 기다림의 조건이자 특징들에 대해 설명한다. 사소함에 얽매이는 것도 기다림이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기다림이다. 그것은 끝없이 남에게 자신을 열어두는 행위이다. 또한 기다림은 끝남이 없는 대기이고 방기이며 기다리는 상대를 최종적으로 소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기다림은 권태와 무의미한 반복을 즐기는 것이고 망각의 힘을 통해 번뇌에서 벗어나는 능력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기다림은 자신을 버리고 그 안에 빈자리를 만들어 거기에 무언가 차오르게 놓아두는 것이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욕망을 채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모두 버린 다음에야 조금씩 피어오르는 희망을 기르는 대지가 아닐까?

    | 추천자: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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