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3월 읽을만한 책]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기사입력 2016.03.12 00:00
길진숙 저 | 북드라망
  • ‘백수’라는 단어를 듣는 일이 거의 일상처럼 되어버린 요즘이다. 지식이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동서고금 3,000년 인류 역사에서 백수가 없는 사회는 없을 텐데, 지금부터 약 300년 전 조선후기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업경제사회였던 당시에 벼슬을 한다거나 육체노동을 통해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한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 대부분은 토지를 보유한 양반 지주들이었다. 지주로서 어떤 식으로든 농업경영을 주도했을 그들을 일방적으로 백수라 부르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요즘의 많은 백수들도 대개 가족경제의 지원 속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점을 고려할 때, 토지에 기초한 가족경제를 통해 생활을 꾸려간 양반지주 유식자(遊食者)를 백수라 부르는 것도 일부 타당하다. 다만 사회경제적으로는 비록 백수처럼 보일지라도, 얼마나 차원 높은 지적 활동을 전개하여 실질적으로 사회적으로 공헌하는가에 따라, 정말 하찮은 백수인지 아니면 사회에 좋은 거름을 제공하는 진정한 지식인인지 갈릴 것이다.

    이 책은 조선후기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격조 높은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데 일조한 네 명의 지식인을 ‘백수’라는 코드로 묶어 종합적으로 재조명한다. 벼슬을 스스로 포기하여 혼탁한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삶에 찌들어 눈앞의 이해타산에도 얽매이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생각의 자유를 만끽한 네 명의 속생각을 들여다본다. 또한 붕당들이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이전투구를 벌이던 당시 현실을 고려하여 각각 서인계열에서 두 명(김창협, 홍대용), 남인계열(이익, 이용휴)에서 두 명을 뽑아 지식의 균형도 맞추었다. 고전평론가인 이 책의 저자는 위 네 지식인의 사유체계에 대한 학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을 일대일로 직접 만나 각자의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고, 그것을 시대상황과 연결하여 담담하고도 감칠맛 나게 풀어낸다. 경제적 활동이라는 형이하학적 기준에만 너무 얽매여 백수를 함부로 판단하고 무시하는 이 숨가쁜 현실에서 한 번쯤은 잠시 한 발 물러서서 삶을 돌아보되, 조선후기 지성사에 대한 지식까지 덤으로 갖출 수 있는 좋은 책이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