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심형철의 실크로드 기행] #15 시집가는 날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5.12.02 02:00
  • 카스에 도착한 첫날 나는 친구에게 웨이우얼족의 결혼식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하였다. 물론 친구는 자신의 인간관계를 총동원하여 내가 카스에 머무는 동안 꼭 결혼식을 볼 수 있도록 해주겠노라 약속하였다. 부탁한 지 하루나 지났을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스의 교외에 있는 쑤푸(疏附) 현 우파르(烏帊爾) 향의 어느 농가의 처녀가 출가한다는 것이었다. 웨이우얼족 전통과 이슬람교의 율법에 따라 진행하는 의식에 이방인이, 그것도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외국인이 참석하여 촬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다. 농촌의 웨이우얼족은 우리처럼 결혼식장에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집에서 의식을 거행하기 때문에 미리 정보를 알지 못하면 결혼식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다. 이렇게 좋은,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알라신에게 감사해야 했다.

  • 웨이우얼족 신랑, 신부
    ▲ 웨이우얼족 신랑, 신부
    카스 시내를 벗어나 파미르 고원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시골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과수원, 방사림으로 심어 놓은 백양나무, 그리고 흙담들 모두가 전형적인 웨이우얼족 농촌의 전경이다. 멀리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고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오늘의 주인공 신부 집이 지척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서니 동네 꼬마들이 먼저 달려와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이윽고 친구가 혼주에게 이차저차 하여 오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하자 어깨를 두드리며 환하게 웃는다. 웨이우얼어로 얘기를 하여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환영한다는 몸짓임을 알 수 있다. 의식을 거행할 시간이 임박했는지 모자를 쓰고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들이 신부 집으로 줄지어 들어선다.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 양탄자 위에 둥글게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는다. 하객으로 찾아온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다른 방에서 이야기하고, 젊은 남자들은 하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그 중 한 청년을 따라가니 마당 한쪽에 있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양고기, 당근, 양파, 토마토, 피망 등을 넣고 만든 걸쭉한 국이 펄펄 끓고 있다. 배식을 담당한 청년은 건더기와 국물을 적당한 비율로 퍼서 연신 대접에 담아준다. 그러면 다른 청년 몇 명은 엉덩이에 모터를 달은 듯 재빠른 동작으로 하객들에게 음식을 배달한다.

    오늘의 주인공 신부 타지꾸리 우스만은 18세이고, 신랑 누르마이 마이티는 23세이다. 우리와 비교하면 상당히 이른 결혼이지만 웨이우얼족 농촌 사회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다. 과거에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신부를 데리러 왔지만 요즘은 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에 온다. 신부 집에서는 마을의 원로들을 초청하고, 권위 있는 아홍[이슬람 성직자]을 청하여 의식을 거행한다. 이 때 마을의 공산당 서기도 당연히 참석하고 이웃 사람들도 참석하여 축하하고 함께 즐긴다. 가장 바쁜 것은 덩달아 즐거워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이다.

    마당에는 전자 오르간을 설치하고 동네 가수로 보이는 남자가 흥겨운 노래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마을 원로들이 엄숙한 분위기로 앉아 있다. 다음 방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가 친구들에 둘러싸여 다소곳이 앉아 있다. 머리와 가슴에 빨간 꽃을 달고, 설렘과 긴장감을 얼굴에 드러낸 채 커다란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본다. 결혼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미소만 살짝 보이고는 수줍어 말을 못한다. 신부의 부모님을 청해 시집가는 딸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말을 물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딸이 좋은 신랑을 만나 결혼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시집가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만면에 희색이 가득하다.

  • 신부의 가족
    ▲ 신부의 가족
    웨이우얼족의 결혼은 대개 이틀간 진행된다. 결혼 전날 신랑 측에서는 많은 예물과 결혼식에 소요되는 경비나 음식을 준비하여 신부 집에 간다. 그리고 결혼 당일 아침에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풍악을 울리며 신부를 맞이하러 간다. 신부집에서 간단한 의식을 마친 후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이 의식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먼저 신랑과 신부는 들러리들의 인도에 따라 집안의 거실 옆방으로 들어간다. 방안에서는 아홍이 코란경을 읽고 신랑과 신부에게 결혼에 동의하는가를 묻는다. 신랑과 신부가 동의하면 낭 조각을 소금물에 적셔 신랑 신부에게 준다. 이 때 신랑 신부는 두 손을 맞잡고 낭을 다 먹는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동고동락하겠다는 다짐의 표시이다. 이 의식이 끝나면 하객들이 있는 거실로 간다. 하객들의 축하와 흥겨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결혼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면 신랑은 신부의 얼굴을 면사포로 가리고 풍악을 울리며 신랑 집으로 간다. 신랑 집 대문 앞에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신화(神火)를 피워 놓는다. 신부가 도착하면 신화에서 옮긴 불을 신부의 머리 위에서 세 번 돌리고 신부는 신화를 한 바퀴 돈 후 집안의 신방으로 들어간다. 신방에서 하객들이 보는 가운데 신부의 면사포를 벗기는 의식을 행한 후 흥겨운 잔치가 이어진다. 농촌에서의 결혼은 개인과 집안의 대사이기도 하지만, 동네잔치이자 오락 활동이기도 하다.

  • 신부집 광경
    ▲ 신부집 광경
    의식이 끝나자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모자를 쓴 신랑이 만족한 표정으로 친구들에 둘러싸여 걸어 나온다. 친구들은 신랑의 허리에 붉은 천을 둘러주고 한바탕 장난을 친다. 등과 어깨를 살짝 치기도 하고 여럿이 신랑을 번쩍 들었다 내려놓기도 한다. 이 장난은 축하와 부러움의 표현이리라. 신랑에게 지금 기분을 묻자 옆에 있는 친구들이 더 흥분된 어조로 한마디씩 거든다. 신랑은 조심스럽게 “어떤 조건도 필요 없다. 그저 머리카락이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하였다.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