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심형철의 실크로드 기행] #13 이슬람 도시 카스(喀什)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5.11.26 13:58
  • 카스는 동서양이 처음으로 만나는 실크로드의 교차지점으로 험준한 파미르고원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다. 과거 카스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서 도시 전체가 있을 건 모두 있는 대규모 시장이었다.

    카스는 '한서․서역전(漢書․西域傳)'에 기록된 서역 36국 중 문화대국이었던 쑤러 왕국(슐랍(Syulab) 왕국이라고도 함. ‘슐랍’은 돌궐어로 ‘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원래의 이름 쑤러는 당나라 때 카스까얼(喀什噶爾)로 바뀌었다. ‘카스까얼(영어 표기는 Kashgar)’이란 돌궐어로 ‘옥(玉)’이 모이는 곳, 혹은 몽골어로 ‘녹색 지붕의 건물’이라는 뜻이다.

  • 아띠깔 광장 노인들
    ▲ 아띠깔 광장 노인들
    자주 올 없는 카스에 올 때마다 웨이우얼족 친구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장만한 그의 아파트에 들어서니 서울 우리 집보다 깨끗하다. 하얀 벽면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고, 거실과 방바닥에 깔려 있는 아름다운 무늬의 양탄자가 웨이우얼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아내는 친절하게 징후(淨壺, 손 씻는 물을 담는 주전자)와 물받이용으로 특수 제작된 대야를 들고 와 손을 닦으라고 한다.

    웨이우얼족의 손 씻는 방법은 주전자로 세 번 물을 부어준다. 손님은 주인이 따라주는 물에 손을 씻고 혹시 부족하면 한 번 더 요구할 수 있다. 손 씻은 물이 바닥에 떨어지거나 튀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멍이 송송 뚫린 뚜껑 달린 대야로 물을 받는다.

    물이 귀한 지역이기 때문에 물을 아껴 쓰는 동시에 위생을 중시하는 웨이우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방에는 이미 나이차, 하미꽈, 호두, 석류, 낭 등이 가득 차려져 있다.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씩 집어 먹다보니 어느새 배가 부르다. 그런데 손수 만들었다며 권하는 빤미옌(스파게티와 비슷한 웨이우얼족의 전통 음식)까지 먹고 나니 음식이 목까지 차올라 숨쉬기도 거북하다.

  • 손닦는 주전자
    ▲ 손닦는 주전자
    친구의 환대를 뒤로 하고 중국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아이티깔(艾提尕尔, 웨이우얼어로 축제라는 뜻)을 찾았다. 사원 입구는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 예배는 성인 남자만이 참석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불행히도 예배 시간에는 이슬람교인이 아닌 사람과 한족, 외국인 등은 입장할 수 없다. 때문에 예배 현장은 직접 볼 수 없었지만 들어가는 사람의 숫자를 보면 예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원 입구에는 각 마을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온 트럭과 경운기, 마차, 그리고 자전거까지 가득하여 마치 교통수단의 종합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드디어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안이 얼마나 넓기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나오는 걸까? 나오는 사람들마다 손에는 예배 시 자신이 사용하는 방석을 들고 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다 나오는 데만 해도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이들과 여자들은 손에 작은 병을 들고 사원 출구에 모여 나오는 남자들의 입가에 대느라 야단이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 방금 예배를 마친 사람에게서 간접적으로나마 알라신의 은혜를 받고자 함이다. 그들은 남자가 병에 대고 ‘후’하고 기운을 불어주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진다.

    이윽고 일반인에게도 입장이 허가되고 중국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카스의 아이티깔 사원에 첫 발을 디뎌 놓았다. 그동안 왜 이슬람교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지? 왜 그렇게 은연중에 교육되어졌는지? 라는 조심스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 아티깔 사원
    ▲ 아티깔 사원
    사원 안에는 정원이 있고, 정원을 지나면 계단이 나타난다. 짧은 계단을 오르면 붉은 색 계열의 양탄자가 깔려 있는, 넓은 마루 같은 공간이 있는데 바로 이 곳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다. 이곳은 반드시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벽면에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교리에 따라 어떠한 조형물도 없다. 벽의 정 가운데에 한 사람이 앉을 정도의 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이 바로 보좌라는 것인데 예배 시 가장 권위 있는 아홍이 앉아 《코란경》을 읽는 곳이다.

    현재의 아이티깔 사원은 1442년, 회력으로는 846년에 짓기 시작하였다. 이 사원은 원래 귀족들의 묘지였는데 7세기 말 아라비아에서 온 선교사가 이 곳에 묻힌 후 이슬람교의 확산에 따라 차츰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곳의 통치자 중 하나인 사커서즈․미얼자가 이 곳에 묻힌 후 그의 후손들이 묘지를 사원으로 개조하여 현재 아이티깔 사원의 원형이 되었다. 1524년 당시 이 지역의 실권자 우뿌러하더가 사원을 더 크게 중수하였다. 그리고 1781년 주러페이야얼이라는 여자가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하여 증축하였다. 원래 그녀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로 순례를 떠났는데 현재의 이란 지역에 전쟁이 발발하여 메카에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성지 순례를 하지 못한 대신 재산 전부를 사원에 헌납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확장된 현재의 아이티깔 사원에서는 특별한 종교 행사 시 최대 10만 명의 신도가 사원 안과 밖, 그리고 지붕 위에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예배를 드리는 장관이 연출된다고 한다.

  • 예배드리는 군중
    ▲ 예배드리는 군중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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