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절세미녀 ‘양귀비’는 어떻게 생겼을까?

기사입력 2017.09.12 10:28
  • ‘양귀비(杨贵妃)’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히며 절세미인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양귀비가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다 우연히 함수화(미모사)를 건드렸더니, 꽃이 부끄러워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꽃을 부끄럽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해 ‘수화(羞花)’라고도 불리는 양귀비는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졌으며 155cm의 작은 키에 65kg에 달하는 통통한 몸매를 지녔다고 전해진다.

    양귀비의 실제 모습은 초상화를 보고 추측할 수 있는데, 중국 정부는 아래의 초상화를 공식 양귀비 초상화로 인정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중국 황제의 별장인 ‘당화청궁(唐華淸宮)’에 걸려 있으며, 이 외에도 양귀비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 중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양귀비 초상화
    ▲ 중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양귀비 초상화
    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玄宗)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라를 기울게 했던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며느리였다. 고아였던 양귀비의 원래 이름은 옥환(玉環)으로 그녀는 양 씨 가문에 양녀가 되어 17세 때 현종의 18 왕자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가 되었다.

    736년 총애하던 무혜비를 잃고 상심에 빠져있던 현종은 옥환(양귀비)이 절세미녀라는 소문을 듣고 술자리에 그녀를 불러내었는데, 빼어난 미모와 지성을 갖춘 옥환(양귀비)은 현종이 작곡한 악보에 맞춰 즉석에서 노래를 짓고 춤을 추어 현종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게 된다.

    옥환(양귀비)에게 한눈에 반한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고, 수왕에게는 위 씨의 딸을 보내어 아내로 삼게 했다. 이때 현종의 나이가 56세, 양귀비의 나이는 22세였으며, 양귀비는 궁중에 들어온 6년만인 27세 때 정식으로 귀비(貴妃)로 책봉된다.

    원래 현종은 수십 년의 태평성대를 구가한 황제였지만, 양귀비에 빠진 이후로는 정사를 멀리해 나라를 급격히 기울어지게 했다. 756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수도 장안에서 달아난다. 안록산은 20대의 양귀비가 40대인 그를 수양아들로 삼을 만큼 아끼고 가까이한 인물이지만, 양귀비의 다른 측근인 6촌 오빠 양국충이 위협을 느끼고 그를 제거하려 하자 난을 일으킨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는 결국 병사들에게 붙잡히고, 현종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양귀비에게 떠넘기게 된다. 자살을 종용받은 양귀비는 37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감한다.

    황후 이상의 권력을 누리며 문자 그대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을 뽐냈던 양귀비의 삶은 파란만장했지만, 지금도 절세미인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그 미모만은 여전히 찬양받고 있다.

  • 양귀비가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는 장면을 그린 프레스코화
    ▲ 양귀비가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는 장면을 그린 프레스코화
  • 에도시대 호소다 에이시가 그린 양귀비
    ▲ 에도시대 호소다 에이시가 그린 양귀비
  • 일본 작가가 그린 양귀비
    ▲ 일본 작가가 그린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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