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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발칙한 야구이야기] '사자(삼성) 잡고 새로운 맹수의 왕이 된 곰(두산)' 한국시리즈 5차전

기사입력 2015.11.02 11:26
  •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두산.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제공.
    ▲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두산.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제공.
    오랫동안 맹수의 왕은 사자였다. 많은 도전자가 사자의 권좌를 노렸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하고 독재의 날들은 길어만 갔다. 어쩌면 이대로 영원히 사자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지내야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사자 앞에 곰이 도전장을 내밀고 나섰다. 사자는 곰의 도전을 물리치고 왕좌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곰이 사자를 잡고 새로운 맹수의 왕으로 등극할 것인가. 31일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한국시리즈 5차전 이야기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주축 선수 3명이 빠져 이 없이 잇몸으로 나선 비상 상황이지만 그래도 정규리그 우승에 빛나는 챔피언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리 없으리라.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만원 관중이 그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지난 2013년 두산과 치렀던 한국시리즈에서도 1승 3패의 열세를 뒤집고 3연승을 내달리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리버스 스윕이 결코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승부는 초반에 결판났다. 필승카드로 내세웠던 선발 장원삼은 3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불과 2와 2/3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갔다. 4차전에서 선발 이현호에 이어 2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두산 노경은처럼 발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으나 삼성에서는 강력한 믿을맨 차우찬을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전날 3과 1/3이닝 동안 54개의 공을 던진 탓이다. 정작 나와야 할 때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반면, 두산의 방망이는 매섭게 돌아갔다. 1회 민병헌과 김현수가 연속 안타로 출루하자 양의지가 2루타로 2명의 주자를 모두 불러들였고, 3회에는 민병헌의 안타를 시작으로 안타 4개와 사사구 2개를 묶어 대거 5점을 뽑으면서 초반부터 승기를 잡아나갔다. 특히 2사 1-3루에서 삼성 포수 이지영이 정인욱의 폭투를 가슴으로 막고 앞으로 떨어뜨리자 3루 주자 고영민이 재빨리 홈으로 파고들어 삼성 배터리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다.

    선발 장원삼에 이어 삼성에서는 정인욱, 박근홍, 심창민, 백정현, 신용운, 조현근, 김기태 등 7명의 투수를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지만, 화산처럼 폭발한 두산의 타선을 진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에 비해 두산은 선발 유희관이 7회 무사 1-3루 위기에 몰리자 니퍼트로 교체하여 1실점으로 막았고, 9회 원아웃부터는 이현승으로 하여금 경기를 마무리 짓게 하였다. 

    경기가 일방적으로 흐르기는 했어도 7회 삼성에게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승엽의 2루타에 이어 박한이의 안타로 만들어진 무사 1-3루에서 이지영의 유격수 앞 땅볼로 1점을 따라붙었다. 그리고는 김상수 대신 타석에 들어선 채태인과 구자욱의 연속 안타로 1사 만루 상황에서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에 빛나는 나바로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 중요한 상황에서 니퍼트의 낮은 원바운드 공에 나바로의 방망이가 힘없이 돌아가면서 추격은 중단되었고 니퍼트의 무실점 기록은 더 늘어났다.

    당분간 무너지지 않을 듯했던 삼성 왕조를 무너뜨린 두산의 챔피언 등극은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01년 이후 14년 만이다. 당시에도 두산은 김응용 감독의 삼성과 만나 4승 2패로 시리즈를 마무리 지었었다. 또한,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OB베어스 시절이었던 1982년(김영덕 감독)과 1995년(김인식 감독), 그리고 2001년에 이어 4번째 우승이다.

    한국시리즈 MVP는 부상 투혼을 발휘했던 정수빈에게 돌아갔다. 1차전에서 왼손 검지를 여섯 바늘 꿰매는 부상을 당했던 정수빈은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571(14타수 8안타)에 1홈런 5타점을 기록하는 만점 활약을 펼쳤었다. 특히, 5차전 7회에는 우측 담장을 넘기는 3점포로 팀 우승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아 올리기도 했다. 정수빈은 기자단 투표에서 66표 중 41표를 받아 허경민(13표), 더스틴 니퍼트(10표), 노경은(2표) 등 동료들을 제쳤다.

    한편, 부임 첫해에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한 두산 김태형 감독은 "5차전 하면서도 승리 실감이 안 났다. 감독으로 첫해 너무 많은 걸 얻은 것 같다. 기쁘기도 하지만 준비할 것도 많다는 생각도 든다"며 가슴 벅찬 소감을 전했고, "시리즈를 통해 작전의 디테일한 부분 등을 더 준비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항상 준비가 돼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것과 순간적으로 생각나서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더라. 그런 부분에서 항상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작전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준비하는 게 부족했던 것 같다"는 말로 시리즈에 대해 평가했다.

    또한, 5년 연속 통합 우승에 도전했다가 마지막에 제동이 걸렸던 삼성 류중일 감독은 "통합 5연패에 실패해 죄송스럽다. 팀 잘 추슬러서 내년에 다시 챔피언에 도전하도록 하겠다. 두산의 14년 만의 우승 축하한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완패했다"며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했고, "프로의 2등은 비참하다. 선수 때 너무 많이 겪어봤다. 프로는 1등을 해야한다. 4년간 우승했지만, 우리가 올해 실패했다. 하지만 올해를 교훈 삼아 내년에 또 도전하겠다"는 말로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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