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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발칙한 야구이야기] '한 걸음 빨리 움직인 곰(두산), 갈지자걸음으로 비틀거리는 사자(삼성)' 한국시리즈 4차전

기사입력 2015.10.31 12:24
  • 무너진 두산 마운드를 굳건히 지켜낸 노경은.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제공.
    ▲ 무너진 두산 마운드를 굳건히 지켜낸 노경은.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제공.
    결과만 보면 명승부였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팽팽한 시소 경기가 펼쳐졌다. 특히 후반부에는 투수 공 하나하나에 이목이 집중될 정도로 긴장감도 넘쳤다. 한 점 차 승부였으니 결과만 놓고 보면 한국 프로야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한국시리즈답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승부였다고 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실책이 쏟아졌고 그로 인해 경기 내용도 실망스러웠던 탓이다. 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 4차전 이야기다.

    선취 득점은 두산의 몫이었다. 1회 선두 타자 정수빈과 허경민의 연속 안타가 단초가 됐다. 민병헌의 희생 번트에 이어 4번 타자 김현수의 빠른 타구가 1루수 구자욱에게 걸렸다. 베이스 바로 옆에서 김현수의 땅볼을 걷어낸 구자욱은 타구를 잡자마자 1루를 먼저 태그하고 홈으로 파고들던 3루 주자 정수빈을 잡기 위해 홈으로 던졌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제대로 던지지 못했고 두 점이나 내주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삼성의 역전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두 타자 박석민의 3루 강습 타구를 잡은 3루수 허경민이 1루에 악송구하면서 무사 2루가 됐다. 이승엽의 안타로 1-3가 된 상황에서 두산 선발 투수 이현호의 폭투로 허망하게 1점을 내줬다. 박한이의 볼넷과 이지영의 희생 번트 후에는 1회 실책의 주인공 구자욱이 속죄의 2타점 적시타를 쳐냈다. 실책 두 개가 불러온 결과였다.

    두산의 역전도 마찬가지다. 2사 후 정수빈과 허경민의 연속 안타가 나온 상황에서 민병헌이 삼성의 두 번째 투수 차우찬의 네 번째 공을 받아쳤다. 타구는 3루로 평범하게 날아가면서 무난히 처리할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러나 3루수 박석민의 글러브에 맞고 튀면서 2루 주자 정수빈이 홈을 밟는 실점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 점수가 이 경기의 결승점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점수가 실책과 어설픈 플레이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두 팀 모두 선발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일찌감치 벤치를 가동했다. 두산으로서는 신인 이현호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부담이었고, 삼성도 1차전에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외국인 투수 피가로를 그대로 밀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두산은 노장 노경은을 2회 투아웃부터 올렸고, 삼성은 5회 투아웃부터 믿을맨 차우찬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선발이 무너진 상황에서 경기 초반부터 마운드를 책임지게 된 노경은은 5와 2/3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두산이 승리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주었고, 차우찬 역시 3과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팀이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5회 2사 1-2루에서 박석민의 미숙한 타구 처리가 두산에게는 승리를, 삼성에게는 패배를 안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경은을 긴급 투입한 두산 벤치의 결단은 칭찬받을 만했다. 8회 1사 1루에서 나바로의 타구가 좌측 펜스를 넘기면서 역전을 허용할 뻔하기도 했으나 폴대 바깥으로 넘어간 파울로 판정받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노경은에게 공을 건네받은 이현승도 9회 연속 3안타로 1사 만루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김상수와 구자욱을 내야 땅볼로 잡아내고 승리를 지켜냈다.

    반면, 차우찬을 투입한 삼성 벤치의 결정은 다소 의아하다. 차우찬이 믿음에 부응하는 투구를 하기는 했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선발로 투입해서 필승 의지를 다지던지, 아니면 다음 경기를 위해 아껴 두든지 해야 했다. 54개의 공을 던진 차우찬은 다음 경기 선발로 나올 수 없거니와 불펜으로 활용하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기는 경기대로 지고 자원은 자원대로 낭비했으니 삼성은 5차전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국 시리즈 우승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두산 김태형 감독은 "노경은이 2회 초에 등판했을 때 감독 마음은 물론 잘 던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렇게 잘 던질 줄은 몰랐다. 여기에 수비의 집중력 덕분에 이긴 것 같다"며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후 "5차전은 말 그대로 총력전이다. 상황 봐서 니퍼트가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로 총력전을 예고했다.

    벼랑에 몰린 삼성 류중일 감독은 "경기가 정말 안 풀린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야구다. 알프레도 피가로와 차우찬이 잘 던졌는데 역전을 못 시켜서 아쉽다. 9회 1사 만루의 역전 찬스를 잡았는데 타선이 안 터졌다"며 아쉬워했고, "최형우가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내가 우리 4번 타자를 못 믿으면 누가 믿겠느냐. 단순히 부진하다고 4번 타자를 뺄 수는 없다. 내일도 믿고 기용하겠다"며 전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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