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로빈의 발칙한 야구이야기] '이빨 빠진 사자(삼성) 얕보다 큰코 다친 곰(두산)의 참사' 한국시리즈 1차전

기사입력 2015.10.27 18:20
  • 3점 홈런으로 두산을 경악시킨 삼성 나바로.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발췌.
    ▲ 3점 홈런으로 두산을 경악시킨 삼성 나바로.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발췌.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던 해태 타이거즈도 선수가 없다며 한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김응용 감독의 어록으로 유명해진 이 말은 이후 약화된 전력으로 팀을 꾸려야 하는 힘겨운 형편을 대변하는 말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로부터 15년여가 흐른 2015년에는 이 말이 다음처럼 바뀌어야 할 것이다. 

    "성환이도 없고, 지만이도 없고, 창용이도 없고…"

    2015 한국 프로야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한국 시리즈를 앞두고 삼성은 해외 원정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성환과 안지만, 그리고 임창용을 선발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아직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도덕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겠다는 의미였다.

    올 시즌 17승을 거둔 윤성환은 NC 해커(19승)와 두산 유희관(18승)에 이어 다승 부문 3위에 올라 있고, 37홀드의 안지만은 기아 심동섭(21홀드)과 넥센 조상우(19홀드)를 제치고 홀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33세이브의 임창용 역시 NC 임창민(31세이브)과 기아 윤석민(30세이브)을 물리치고 세이브 부문 선두에 올라있다. 팀전력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성적들이다.

    팀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삼인방이 모두 빠졌으니 삼성에서는 초비상이 걸릴 만도 했다. 당장 1차전과 2차전 선발을 피가로와 장원삼에게 맡긴다 해도 3차전부터 구멍이 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허리와 뒷문을 굳게 지켜왔던 두 명이 빠지면서 그쪽에도 비상이 걸렸다. 선발과 불펜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차우찬을 전천후로 기용하겠다는 구상을 세워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차우찬이 7차전을 모두 책임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삼성이 초상집이라면 그런 삼성을 상대해야 하는 두산은 잔칫집이라 할 수 있었다. 2001년 이후 14년 만이자 OB 베어스 시절을 포함하면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로도 보였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NC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승자가 한국 시리즈 챔피언이 되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두산 선수들이 5차전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예상한 데 비해서 삼성 선수들이 7차전까지 예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26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 시리즈 1차전은 두산이 먼저 주도권을 잡으며 시작됐다. 톱타자 정수빈이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2번 타자 허경민의 선제 솔로포를 시작으로 민병헌, 김현수, 양의지의 연속 안타가 이어졌고 2점을 먼저 얻어냈다. 포스트 시즌 출전 신기록을 작성 중인 홍성흔은 병살타로 공격의 맥이 끊기기는 했어도 두산의 상승세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2회에도 두산의 방망이는 뜨거웠다. 선두 타자 오재원이 삼진으로 물러나기는 했으나 오재일과 김재호의 볼넷에 이어 정수빈의 우중간 2루타가 나왔다. 1회 선제 홈런의 주인공 허경민이 2타점 적시타로 뒤를 받치면서 3점을 더 추가, 스코어는 5:0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삼성이 3회와 4회에 2점씩을 따라붙기는 했어도 상승세의 두산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9:8. 삼성의 승리였다. 전무후무한 5년 연속 정규리그와 한국 시리즈 통합 챔피언에 도전하는 삼성의 저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빨 빠진 사자를 얕본 두산의 참사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비상사태를 선언한 삼성은 이를 악물고 경기에 나선 반면, 방심한 두산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은 실책성 플레이가 그를 증명한다.

    먼저 4회 이승엽의 타구. 유격수나 좌익수 중에서 처리할 수 있는 비교적 평범한 플라이였지만 콜을 부르며 따라가던 유격수 김재호가 갑자기 글러브를 빼면서 아무도 잡지 못하는 타구가 되고 말았다. 6:3으로 앞서고 있었고, 삼성이 따라오지 못하리라는 심리적인 방심이 있었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플레이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한 점 차 승부였으니 결과적으로 이때 내준 점수가 얼마나 큰 점수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8:7로 아슬아슬하게 앞서 가던 7회에도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왔다. 2사 1-2루에서 8번 타자 이지영을 상대하던 두산의 네 번째 투수 이현승의 두 번째 공이 바닥으로 깔리면서 포수 양의지의 가랑이 사이로 빠지는 폭투가 되었다. 포수 글러브 아래로 새나갔다는 점에서 포수의 에러일 수도 있으나 기록은 투수의 폭투였다. 2사 1-2루가 2사 2-3루로 바뀌면서 역전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다행히 이지영의 타구가 투수 정면으로 향하면서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채 이닝을 종료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현승의 1루 송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면서 동점에 이어 역전 점수까지 내주고 말았다. 이현승의 송구가 약간 치우치기는 했어도 1루수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으리라 여겨졌으나,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 오재일은 성실하지 못한 플레이로 결국 다 잡은 경기를 내주는 불상사를 초래하게 됐다.

    벤치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선발 투수 유희관이 꾸역꾸역 막아내기는 했어도 경기를 지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유연하게 마운드를 운영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특히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함덕주를 무리하게 올려 나바로에게 3점 홈런을 맞고 8:7로 쫓기게 된 장면은 전적으로 벤치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의 삼인방이 빠지지만 않았어도 두산이 그렇게 안일하게 경기를 풀어갔을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