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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철의 실크로드 기행] #6 실크로드의 동대문 하미(哈密)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5.10.31 02:00
  • 하미는 실크로드의 동대문이다. 장안에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따라 신강지역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나타나는 오아시스 도시인 하미는 실크로드의 남로와 북로가 모두 연결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실크로드의 거점도시이다.

  • 하미왕릉
    ▲ 하미왕릉
    특히 하미는 청나라 때까지 자치권을 인정받은 하나의 왕국으로 존재하였다. 청의 몰락과 함께 하미왕의 존재도 사라지게 되었지만 하미 왕국의 흔적은 하미왕릉에 남아 있다. 하미왕릉은 하미 시에서 서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모두 9대에 걸쳐 존재한 하미왕국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다. 이곳을 중국인들은 하미역대회왕묘군(哈密歷代回王墓群)이라고 하는데, 하미가 이슬람교 신봉 지역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의미하는 회(回) 자를 사용하여 표기한다. 하미왕릉의 무덤은 모두 실내에 조성되어 있다. 신강지역의 이슬람 지도자나 귀족들의 무덤은 모두 웅장한 건축물을 짓고 그 안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봉분이 큰 무덤과는 다르다. 무덤을 안치한 건축물 중 남쪽의 두 곳과 북쪽의 한 곳이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북쪽의 건축물이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로 주목받는다. 북쪽의 건축물은 아치형으로 밑면은 사각이고 윗면은 둥글다. 높이는 25m이고 네 귀퉁이에 원주형의 거대한 기둥이 서있다. 아치형의 천정은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아름다우면서도 신비감을 준다. 안쪽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하미에서 북쪽으로 약 150㎞에 위치한 빠리쿤 호수변의 광활한 초원을 답사하는 것도 자못 흥분되는 일이다. 하미시에서 빠리쿤 초원을 가려면 천산산맥의 동단 끝자락을 넘게 되는데, 푸른 초지로 된 구릉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녹지대, 그리고 그 안에 멋들어진 호수, 이렇게 아름다운 초원의 풍광을 보고 나면 실크로드 위의 오아시스가 얼마나 큰지를 체험할 수 있다. 중국의 3대 명마(名馬) 중 하나인 빠리쿤마의 고향인 빠리쿤 초원은 중국의 유목민족 하사커족의 자치현이다. 신강지역에서 초원이 있는 곳이면 예외없이 하사커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여름이 되면 드넓은 초원 위에 장펑[유목민족의 이동식 가옥]을 짓고 방목을 한다. 호수로 흘러가는 지류가 초원을 가로 지르고 그 주위로 말떼, 양떼, 소떼가 아주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감상하노라면 이곳이 사막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 빠리쿤초원
    ▲ 빠리쿤초원
    중국인이면 누구나 하미라는 지명을 잘 알고 있다. 도시가 유명해서라기보다 하미꽈(哈密瓜)라는 과일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하미꽈 껍질을 벗겨 보면 속은 호박 같기도 하고, 큰 참외 같기도 하다. 한 입 베어 물면 사각사각하고 달콤한 것이 수박, 참외, 메론 등 여러 가지 과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하미꽈라는 이름을 보면 누구나 이 과일이 하미에서 왔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하미꽈의 실제 고향은 하미보다 서쪽에 있는 싼싼(鄯善) 현이다. 이 과일의 이름에 고향의 이름인 싼싼을 제치고 하미가 붙여진 유래는 무엇일까?

    청나라 건륭제 때의 일이다. 당시 청으로부터 하미 지역의 왕권을 위임받은 하미왕이 황실로 공물을 보내는데 지금의 하미꽈를 끼워 보냈다. 처음 보는 과일인 하미꽈를 먹어 본 건륭황제는 맛이 정말 좋다며 옆에 있는 신하에게 “이 과일의 이름이 무엇인고?”하고 물었다. 그런데 신하도 처음 보는 과일이라 망설이다가 ‘하미에서 진상한 과일이니 하미꽈이겠지’ 생각하고는 “신강의 하미꽈라고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이렇게 하여 하미꽈라는 이름이 생겨났지만 사실은 싼싼꽈라고 해야 맞다. 잘못 붙여진 이름이 지금까지 굳어져 내려온 셈이다.

  • 위그르족-과일파는 장터
    ▲ 위그르족-과일파는 장터
    중국에서 명성이 높은 하미꽈의 도시 하미에 도착하여 그 달콤한 맛을 보지 않고 지나친다는 것은 하미꽈에 대한 불경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그러나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하미꽈는 열을 내는 작용을 해서 많이 먹게 되면 입안과 목안이 터지기도 하고 심하면 코피가 나기도 한다. 인간의 식탐에 대한 신의 경고가 아닐까?

    하미꽈는 보관이 용이한 과일이다. 포도는 장기간 보관하려면 말려야 하지만 하미꽈는 원형 그대로 상온에서 보관이 가능하다. 특히 건조하고 추운 겨울 동안 신강에서는 부족한 과일을 대신할 먹을거리로 하미꽈만한 것이 없다. 집집마다 침대 밑에 하미꽈를 꽉 채워두고는 이듬해 봄까지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장기간 실내에서 보관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의 가정집이 우리와 같은 온돌 구조가 아니라, 바닥이 난방이 되지 않는 시멘트나 타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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