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중국 사랑방] 중국의 '실크로드'란?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7.08.17 09:01
  • ‘실크’라는 것은 사람들의 의생활(衣生活)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그 역사가 매우 유구하다. 실크의 고향은 중국이다. 일찍이 기원전 12세기의 갑골문에 이 실크를 의미하는 ‘사(絲)’와 ‘잠(蠶)’이란 글자가 있다. 인류의 의생활에 오랜 시간 공헌을 한 실크가 중국의 4대 발명품에 끼지 못하는 것은 나침반, 종이, 인쇄술, 화약 등에 비해 역사가 길지만 사치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대 로마인과 희랍인들은 중국을 ‘실크의 나라’라고 불렀다. 이는 서양인들의 중국에 대한 최초의 이해가 실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원전후의 시기에 로마의 귀부인들이 화려한 비단을 몸에 걸치게 된 것은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 중계무역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당시는 아직 바닷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교역이 육로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처음부터 중국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생긴다는 평범한 원리에 의해 길이 열렸다.

    실크는 중국인이 발명하였고, 실크로드 개통 역시 중국인들이 상당 부분 기여하였다. 전체 약 7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의 2/3에 해당하는 4000km가 중국 경내에 있지만 실크로드라는 멋들어진 명칭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188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이 명명하였다. 실크로드는 그 멋진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유혹한다.

    국적과 민족이 다르고 문화 배경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적 하에 이 길을 통과하며 많은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남겼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실크로드 개통의 선구자는 단연 한(漢)나라의 장건(張騫)이다. 그는 현재의 중국 섬서성(陝西省) 성고(城固) 사람으로 비천한 신분이었다. 장건은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는 말에 딱 알맞은 인물이다. 그의 활약상을 더듬어 보는 것이 실크로드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이자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 실크로드상의 낙타떼
    ▲ 실크로드상의 낙타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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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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