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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전설] 공주를 스토킹한 상사뱀

기사입력 2017.08.23 09:31
전설따라 삼천리
  • 청평사 초입에 설치된 '상사뱀과 공주' 조형물
    ▲ 청평사 초입에 설치된 '상사뱀과 공주' 조형물
    춘천 오봉산 청평사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전설이 있었으니 바로 '상사뱀과 공주' 이야기다.

    옛날 중국의 당태종에게는 평양공주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과 공주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지, 아니면 청년의 일방적인 사랑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청년의 사랑은 당태종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청년이 죽은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디선가 나타난 뱀 한 마리가 공주의 온몸을 칭칭 휘감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뱀은 신분의 차이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청년이 상사뱀으로 변한 것이었다. 상사뱀(相思-)은 '상사병으로 죽은 남자의 혼이 변하여 사모하던 여자의 몸에 붙어 다닌다는 뱀'이다.

    갑작스러운 상사뱀의 출연에 놀란 당태종은 의원들을 불러 갖은 처방을 해봤지만 상사뱀을 떼어낼 수 없었고, 잠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볼일 보러 갈 때까지 꼼짝 않고 붙어있는 상사뱀 때문에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결국, 영험한 사찰을 돌며 기도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게 됐고, 공주는 신라의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노숙한 공주는 다음날 사찰의 범종 소리가 들려오자 상사뱀에게 부탁을 한다.

    "절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밥을 얻어오려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 수 있는지요. 너무 피로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다녀오겠습니다."

    공주의 부탁에 그동안 한 번도 말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었지만, 이날은 웬일인지 순순히 공주의 몸에서 내려와 주었단다.

    상사뱀에게 풀려난 공주는 목욕재계를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랜만에 홀가분한 몸이 된 공주는 꽤 열심히 오랫동안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상사뱀은 시간이 지나도 공주가 오지 않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밀려왔고,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굴에서 나와 공주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상사뱀이 청평사 문에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한 줄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쳤다.

    "우르르 쾅!"

    그렇게 벼락을 맞은 상사뱀은 그대로 죽어 폭우와 함께 떠내려가고 만다.

    한편, 절에서 밥을 얻어 굴로 돌아온 공주는 죽어서 폭포에 둥둥 떠 있는 상사뱀을 발견하게 된다. 상사뱀이 왜 죽었는지 알 길이 없는 공주는 깜짝 놀라고 만다. 자신을 옭아매던 상사뱀의 죽음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죽은 상사뱀을 거두어 정성껏 묻어준 공주는 그 후 청평사에서 머무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귀국했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돌아나간 문은 회전문, 공주가 노숙했던 작은 동굴은 공주굴, 공주가 목욕한 웅덩이는 공주탕, 삼층석탑은 공주탑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또, 2006년에는 이 '공주와 상사뱀' 전설을 모티브로 한 조각상을 청평사 진입로에 설치하기도 했다.

    보통 청평사의 전설을 두고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라 명하고 있지만, 글쎄. 공주에게도 이 사랑이 아름다웠을까.

    시작은 사랑이었을지 모르나 결국은 사랑하는 공주에게 짐만 안겨준 상사뱀의 사랑은 참 이기적이다. 요새로 치면 상사뱀은 사랑을 가장한 한낱 '스토커'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살아서 못 이룬 사랑의 한을 죽어서나마 뱀의 몸을 빌려서 이루려했다니! 이 청년 그리 듬직한 남자는 아니었을 것 같다.

    착한 것이지 애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공주는 상사뱀을 불쌍히 여겨 고이 묻어주었다고 하니, 역시 한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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