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중국 사랑방] '한류'의 원조는 '천안문 학생운동'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5.07.22 06:00
  •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류(韓流)`라는 단어가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하였기 때문에 `한류`라는 말은 우리에게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한류라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중국에서의 `한류`란 한국 문화의 성공적인 중국 상륙`이란 말로 풀이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현재 중국에서의 한류는 대개 연속극, 대중가요, 영화, 패션, 성형수술 등의 순서로 발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혹은 중국에서 종종 한류의 원조가 과연 무엇인가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때마다 각 분야의 사람들이 말하는 원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중국 공영방송이 최초로 방영한 한국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를 들기도 하고, 혹자는 가수 겸 탤런트 안재욱을 거론한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여러 가지 원조격인 방송이나 연예인을 들고 있지만 과연 한류라는 것이 개인이나 연속극 한 편으로 바람을 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류를 `한국 문화의 성공적인 중국 상륙`이라고 정의할 때, 나는 한류의 원조를 `천안문 학생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중국 전국에서 북경으로 유학와 공부하고 있는 박사과정 친구들의 얘기를 종합한 결과이다.

    중국이 1979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자본주의 문화의 급속한 확산, 정부에 대한 불만 표출, 학생 운동 등을 막기 위해 1980년대 초부터 각 대학별로 자본주의 사회의 혼란에 대한 정신 교육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교육용 비디오 자료 중의 하나가 한국의 학생 시위현장 녹화 테이프였다고 한다. 그 테이프에는 얼굴에 복면을 하고, 색색의 깃발을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면서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과 방망이를 들고 완전무장한 경찰, 최루탄, 그리고 경찰이 학생들을 마구 구타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중국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이 녹화테이프를 보아야만 했고, 자본주의 사회의 극도로 혼란한 모습과 학생들을 구타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고 한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북한에서 제공한 한국 비방 자료를 보고 한국은 정부가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강제로 진압하고, 미국의 군화발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처지이며 몹시 가난하여 거리에 거지가 넘쳐나고 있다는 편견을 갖고 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중국정부의 정신 교육은 본래의 취지에서 어긋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즉, 시위 현장의 학생들이 입은 옷, 가끔씩 보이는 거리의 차들, 건물 등을 보면서 한국이 자신들이 그 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중국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간접적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을 확신하는 계기였다고 한다.

    1989년 북경의 심장인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을 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동안 보아왔던 한국의 학생운동에서와 같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며 깃발을 세웠다. 이윽고 정부에서 군부대를 앞세워 강제 진압할 당시에도 학생들은 `한국에서 학생들이 시위할 때 경찰이 쏘는 총은 전부 최루탄이나 공포탄이었지. 그러니 걱정 할 것 없어. 설마 진짜 총을 쏘겠어`라는 생각으로 군부대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역사적인 6월 4일, 내 친구 중 한 명(당시 대학 4년)도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천안문으로 가기 위해 시즈먼(西直門)에 도착했을 때 군인들이 길을 막고 해산을 명령하였다고 한다. 이 때 어떤 학생이 `저거 가짜야, 실탄이 아니라구! 가자! 와!`라고 외쳤단다. 그러나 실탄이 발사되자 귀청을 때리는 총성, 건물에 맞고 튀기는 총탄을 듣고 보자 학생들은 혼비백산하여 자전거를 뒤로 돌려 내뺐다고 한다. 물론 머리띠를 땅에 팽개치고 깃발도 내동댕이 치고서.

    군부대의 강제 진압이 있기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난생 처음 해보는 시위라는 것에 묘한 흥분감까지 느꼈고 깃발 아래에 서서 머리띠를 두른 모습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까지 찍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진이 훗날 경쟁이 치열한 인기 직종에 취업을 하려고 할 때 당시의 사진이 사단이 되어 취업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국 천안문 학생운동이 바로 한류의 원조라고 생각하는데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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