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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철의 중국 소수민족 이야기] #1 몽고 초원을 호령했던 위그르족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5.06.17 06:00
위그르족의 테러는 어떤 의미인가?
  •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곳곳에서 기자든 관광객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군사작전에 버금가는 검색을 실시한다는 보도가 있다. 테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인데 과연 누가 누구를 테러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최근 티베트 독립요구 시위와 위그르족의 폭탄테러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테러의 주체로 보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위그르족은 어떤 민족일까? 반 중국 단체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듯하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뉴스에 보도되는 위그르족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말하는 위그르(Uighur)족은 서양식 발음이고, 중국에서는 민족의 이름을 음역하여 웨이우얼(維吾爾)족이라고 한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독특한 문화를 자랑하는 웨이우얼족은 중국의 서북지역에 위치하는 신장(新疆)웨이우얼자치구에 집중거주하고 있다.

  • 중국인과는 확연히 다른 외모의 웨이우얼족 노인
    ▲ 중국인과는 확연히 다른 외모의 웨이우얼족 노인
    신장의 웨이우얼족 독립운동은 민족적, 종교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 중동 문제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에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대내외적으로 몹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웨이우얼족의 독립 문제에 관한 역사적 배경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범이슬람주의이다. 이것은 원래 이슬람문화권이 단결하여 범슬라브주의에 대항하자는 것이었으나 후에 독립을 고무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둘째, 범돌궐주의이다. 이것은 돌궐어족이 하나로 뭉쳐 단일 국가를 건립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신장의 웨이우얼족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돌궐어족이기 때문에 두 가지 이론 모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로 웨이우얼족의 독립 투쟁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웨이우얼족은 2차 대전 이후 한때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우고 독립했으나 1949년 중국에 병합되었다. 웨이우얼족 독립 세력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키르기스스탄 등과 연대하여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수립을 목표로 독립 운동을 전개해왔다.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둔 신장 독립주의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해방조직(ETLO)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성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웨이우얼족 모두에게 중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무장 투쟁을 호소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 중국 이슬람교의 성지이자 웨이우얼족의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카스의 아이티깔 이슬람사원
    ▲ 중국 이슬람교의 성지이자 웨이우얼족의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카스의 아이티깔 이슬람사원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시 세계 무역 빌딩이 테러당한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자, 중국은 재빨리 신강과 아프가니스탄의 접경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고 테러 용의자, 즉 독립운동을 하는 웨이우얼족을 색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인권을 탄압했다는 국제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과거에는 웨이우얼족의 무장 투쟁에 대한 언론 보도를 일체 삼갔으나 요즘은 간혹 폭도들의 테러로 발표하기도 한다. 발표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중국에서 발생한 웨이우얼족의 테러는 260건에 달하며 이로 인해 600여명이 숨지거나 다쳤다고 한다. 최근에는 카스에서 중국정부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있어 중국 정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신장의 이닝 시에서는 한(漢)족과의 충돌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심지어 죽기도 하였다. 각 지역마다 주민들 간의 사소한 문제가 민족 문제 혹은 종교 문제로 확대되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족들의 입장에서는 배후조정을 하는 일부 무장 세력이 순진한 웨이우얼족 농민들을 부추키어 소란을 피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웨이우얼족 입장에서 보면 한족을 상대로 단순히 투정을 부리거나 소란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는 인권, 종교, 독립이라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마치 지뢰처럼 곳곳에 매설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웨이우얼족과 한족 간에 사소한 말썽이 생기면 대개 웨이우얼족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 만약 공정하거나 혹은 불리한 판정으로 웨이우얼족이 한족에 비해 손해를 본다면 민족 차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웨이우얼족과 한족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웨이우얼족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는 중국의 동부 지역에 사는 한족들은 웨이우얼족에 대한 편견이 적지만 신장 지역에 살고 있는, 혹은 산 적이 있는 한족들은 누구나 웨이우얼족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을 한두 가지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신강 지역에서의 웨이우얼족 테러 활동이 맞물려 신장은 항상 위험한 지역이라는 선입관이 팽배하다.
     
    그러나 내가 만난 웨이우얼족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알라신의 피조물, 자신의 형제라는 이슬람의 정신을 실천하는 웨이우얼족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족 문화로의 동화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고 살아가는 그들의 민족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위그르족은 언제, 왜 몽고초원에서 신장지역으로 이주하였을까?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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