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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소극장] '킹스 스피치' 말더듬이 왕이 가르쳐주는 연설의 기술

기사입력 2015.05.13 08:30
  • 역사는 때때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오늘날 60년 넘게 군림하고 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본래는 왕위에 오를 서열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조지 5세가 타계하자 그녀의 큰아버지였던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에드워드 8세는 이혼녀와 사랑에 빠진 나머지 즉위 1년도 채 안돼 영국 국왕이란 무거운 짐을 스스로 내려놓고 만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때부터 왕이 될 교육을 받은 뒤, 훗날 25세의 나이로 군주가 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 역시 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라는 권력을 탐하기보다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다. 자신은 형보다 모든 면에서 뒤진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형이 왕이 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이러한 그의 짙은 패배감 뒤에는 '말더듬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 조지 6세(위)와 라이오넬 로그(아래).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는 것으로 나오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실제로 둘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 조지 6세(위)와 라이오넬 로그(아래).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는 것으로 나오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실제로 둘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버티라고 부르겠소"
    "그건 가족들만 쓰는 이름이오"
    "좋네요. 여기선 동등한 위치인 게 좋아요"

    아내의 소개로 괴짜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 분)를 만나게 되는 조지 6세(콜린 퍼스 분). 그런데 둘은 첫 만남부터 삐걱거린다. 장차 왕이 될 왕자에게 당당하게 동등함을 요구하는 것은 기본, 말더듬이 치료는 커녕 무턱대고 돈 내기부터 하자는 이 남자, 라이오넬 로그에게 치료를 계속 맡겨도 되는 걸까?

  •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킨 형 에드워드 8세와 비슷하게 조지 6세도 로맨티스트였다. 그는 퀸 엘리자베스에게 세 번이나 청혼했고, '그녀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결혼 후 퀸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컴플렉스 극복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킨 형 에드워드 8세와 비슷하게 조지 6세도 로맨티스트였다. 그는 퀸 엘리자베스에게 세 번이나 청혼했고, '그녀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결혼 후 퀸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컴플렉스 극복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킹스스피치'는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겠지만, 영화 '킹스 스피치' 속에 특별한 반전은 없다. 말더듬이라는 장애를 가진 왕이 무수한 노력을 통해 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주재료이고, 이 과정에서 삐걱거리던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로그가 점차 마음을 열고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눈다는 것이 양념이다. 장애의 극복과 우정. 어찌보면 조금은 진부한 감동 스토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 영화 '킹스 스피치'는 처음과 끝 부분에 조지 6세의 연설 장면을 배치하여 관객들이 그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 연설에서는 불안해하는 관중들의 눈빛이 보이지만, 마지막 연설에서 그 눈빛들은 환호로 바뀐다.
    ▲ 영화 '킹스 스피치'는 처음과 끝 부분에 조지 6세의 연설 장면을 배치하여 관객들이 그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 연설에서는 불안해하는 관중들의 눈빛이 보이지만, 마지막 연설에서 그 눈빛들은 환호로 바뀐다.

    그러나 말더듬이 왕이 전하려는 이 영화의 진짜 포인트는 따로 있다.

    영화 속에는 조지 6세가 히틀러의 연설 영상을 보며 '말이 청산유수'라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조지 6세와 동시대 인물인 히틀러는 타고난 언변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달변가였다. 하지만 히틀러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대중들을 선동하고 세뇌시키는 데 이용하며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런 히틀러에 맞서는 조지 6세는 어땠을까. 비록 청산유수는 아니지만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진심을 담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도중 영국인들을 단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설 울렁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사기를 북돋워 주는 조지 6세에게 영국 국민은 감동했다. 게다가 그의 가족은 런던에 폭탄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버킹엄 궁을 지키며 국민과 함께했고, 덕분에 조지 6세는 영국인이 사랑하는 국왕 중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 보다, 얼마나 진정성 있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평범한 진리가 반세기 전 말더듬이 왕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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