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토크] 박힌 돌 빼낼 태세? '고급 붕어빵'을 맛보다

기사입력 2015.03.19 17:39
  • 겨울철 하얀 종이 봉투에 담아주는 붕어빵을 들고 집으로 향하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일이다. 붕어빵이 눅눅해질라 집에 들어오자마자 종이봉투를 쭈욱 찢어 가족들 앞에 내놓으면 누가 언제 이렇게 먹은 건지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지폐 한 장이면 몇 마리쯤 거뜬히 건질 수 있었으니 붕어빵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서민 간식임에 틀림없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에게 '붕어빵'이라 하고, 머리를 먼저 먹느냐 꼬리를 먼저 먹느냐에 따른 심리테스트가 있을 정도로 붕어빵은 우리에게 꽤 친숙한 존재이다.

    그런데 서민 간식의 대표주자 붕어빵이 최근 확 달라졌다. 몸값도 10배 가까이 올랐을 뿐더러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는 이 붕어빵만으로 한 달 매출이 2억 원에 달한다고. 대체 무슨 붕어빵이길래? 

    개당 2,900원~3,500원…비싼 몸 '고급 붕어빵'

  • 매장 밖에서도 고급 붕어빵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매장 밖에서도 고급 붕어빵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직접 찾아봤다. 고급 붕어빵을 판매하고 있는 번화가의 한 매장.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 붕어빵을 굽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주문을 하는 사이 캐리어를 끈 외국인들이 안으로 들어올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이 보인다. 매장 직원에게 물으니 일본인, 중국인 등 외국인 손님들도 꽤 많이 온다고. 메뉴는 플레인부터 팥, 애플망고, 인절미 등 여섯 종류다. 가격은 '고급'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개당 가격이 최소 2,900원에서 3,500원에 달한다. 길거리 붕어빵의 경우 비싸도 천 원에 2개, 개당 5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센 편. 과연 고급 붕어빵은 제 값어치를 할 수 있을까?

    '바삭' 크루아상에 달달한 팥앙금·각설탕…"환상 궁합"

  • 두손으로 고이 들고 먹어야 할 것 같은 모습의 '고급 붕어빵'
    ▲ 두손으로 고이 들고 먹어야 할 것 같은 모습의 '고급 붕어빵'
    '바삭' 고급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자 나는 소리다. 조금 전 붕어빵을 살짝 집어 올렸을 때 크루아상 부스러기가 떨어지더니 예상했던 대로다. 붕어빵 겉에 박혀있던 각설탕이 씹히며 입안에서 녹는다. 반죽 자체가 단 것과는 다른 매력의 단맛이다. 두 입을 베어 물자 "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드디어 팥의 등장. 바삭한 크루아상과 아작 씹히는 각설탕, 달달한 팥앙금이 환상 궁합을 뽐내는 순간이다. 각설탕의 단맛과 팥앙금의 단맛, 서로 닮은 듯 다른 두 맛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팥앙금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고급 붕어빵을 반 쪼개어 보려 했으나, 얼마나 반죽이 쫄깃한지 붕어빵이 완전히 해체될 것만 같아 그만 두었다. 고급 붕어빵의 팥앙금은 길거리 붕어빵처럼 가득 차 있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신의 한 수가 아닐까. 붕어빵 겉면에 각설탕이 박혀있기 때문에 팥앙금도 가득 차 있었다면 너무 단맛이 강해 풍미를 해쳤을 터다. 세 번째 입부터는 맛 평가는 잊은 채 네 입, 다섯 입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짭짤한 점심을 먹은 후 아메리카노에 곁들일 달달한 디저트로 딱인 맛. 왜 사람들이 고급 붕어빵에 환호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많이 사면 하나 더 주나요? 못내 아쉬운 붕어빵의 '情'
  • 머리부터 먹을까? 꼬리부터 먹을까? 겨울철 별미인 붕어빵.
    ▲ 머리부터 먹을까? 꼬리부터 먹을까? 겨울철 별미인 붕어빵.
    고급 붕어빵을 맛본 뒤 길거리 붕어빵을 하나 들었다. 하얀 종이봉투를 쭉 뜯어 과감하게 머리와 꼬리를 잡고 반을 가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배를 빵빵하게 채운 팥앙금. 한입 베어 물자 '그때 그 붕어빵'의 맛이다. "그래~ 이 맛이야". 달달한 팥앙금을 감싼 붕어빵. 어려서부터 먹어왔던 익숙한 맛이 입안에 감돌자 왠지 모를 안도감까지 든다.

    고급 붕어빵, 참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 허나 가요가 흘러나오는 세련된 카페에서 붕어빵을 들고 있자니 뭔가 어색하고 허전한 느낌이다. 길거리 붕어빵은 노점상 주인 인심에 따라 몇 천 원 어치 사면 덤으로 하나 더 담아주기도 했다. 붕어빵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동안 어묵 국물 한 모금 마시며 몸을 녹이는 것도 꽤나 괜찮은 추억거리였다는 생각도 든다. 비록 길거리 붕어빵은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어 아쉽지만 딱 그때만 먹을 수 있어 더 소중한 것, 그래서 별미가 '별미' 아니겠는가. 붕어빵의 변신이 반갑긴 하지만 가벼운 지폐로 여러 사람의 출출함을 달랠 수 있고, 추억거리까지 얹은 서민 간식에 정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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