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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두 쌍둥이 남매가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있다. 엄마는 제발 두 아이를 모두 구해달라며 애원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살릴 수 있는 아이는 단 한 명뿐. 딸을 구하면 무거운 돌더미가 아들을 덮칠 것이고, 아들을 구하면 딸이 그 속에 파묻혀 죽어갈 것이다. 간간이 들려오던 아이들의 숨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있다. 빨리 선택을 하라는 구조대원들의 화난 목소리 사이로 엄마가 말한다.
"아들… 내 아들을 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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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여름 중국의 당산, 이 단란했던 네 가족을 파괴시킨 건 새벽녘에 닥친 대지진이었다. 23초간의 이 짧은 지진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망자 24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8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희생됐으며, 발전하던 공업도시 당산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인류 역사 속에 20세기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는 '당산 대지진'이다. 영화 '대지진'은 시작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이 끔찍한 재앙을 재현하고는, 이어 남은 시간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 초점은 맞춘다. 대부분 재난영화가 재난이 일어나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지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영화의 영어 제목이 'After Shock'인 것도 이러한 감독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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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 팡떵(장징추 분)은 시신 더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팡떵은 다행히 한 군인 부부에게 입양돼 유복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이따금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죽음을 마주한 순간 자신이 아닌 남동생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엄마의 목소리다. 한편 엄마 리위엔니(쉬판 분)는 지진으로부터 딸과 남편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매일같이 딸과 남편의 영정 앞에 향초를 피우고, 지진이 일어나기 전날 밤 딸에게 사주기로 약속했던 토마토를 씻어 그 옆에 둔다. 행여나 돌아올지도 모를 딸과 남편의 영혼이 길을 잃을까 낡은 시골집에서 이사도 가지 않는 고집스러움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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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리위엔니와 팡떵이 각자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뒤, 32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두 모녀를 재회하도록 만든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재회하게 되는 계기는 또 다른 지진을 통해서다. 이미 중년을 훌쩍 넘긴 엄마가 32년 만에 살아 돌아온 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리위엔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앞에 선 딸에게 말을 건넨다.
"얘야, 너를 위해 토마토를 씻어두었단다.
너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구나."
영화 '대지진'은 흔한 재난영화처럼 가족애를 내세우며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 않는다. 그러나 한평생 한 곳에서 가족들을 기리며 살아 온 엄마와, 성인이 돼 또 다른 지진을 겪으면서 그때의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딸의 모습은 먹먹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엄마를 본 팡떵은 버림받은 고통만큼이나 버릴수 밖에 없었던 고통을 감내하며 사는 것도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 -
어른이 된 팡떵이 겪게 되는 또 다른 지진은 다름 아닌 2008년 발생한 쓰촨 대지진이다. 영화는 중국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두 개의 지진을 한 작품 속에 담아내며, 이로 인해 희생됐던 사람들을 애도하고 또 괴멸된 땅 위에서 도시를 재건해 낸 중국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그러면서 끔찍한 재난의 희생자는 역사책 속에 기록된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의 가족들이었다고 말한다. 예견치 못한 대재앙은 너무나 참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픔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게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다. 13억 중국 대륙을 울린 영화 '대지진'은 2010년 개봉해 중국의 역대 흥행 수익을 경신(1130억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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