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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힘드셨나요? 당신의 마음에 작은 힐링을 드립니다.”
우연히 들른 서울 시민청에서 독특한 자판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현대인의 고단한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마음약방’ 자판기다.
마음약방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자판기에 기부금 500원을 넣은 후 20가지 증상 중 처방이 필요한 증상을 선택해 해당 번호를 누르면 끝.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고단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니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어났다. -
증상에 따라 서로 다른 처방이 담겨있다는 마음약방의 약 상자는 꽤 유혹적이다. “월요병 말기 - 출근하기 싫어요”, “미래막막증 - 암담해요”, “현실도피증 - 도망치고 싶어요” 등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증상의 고급스러운 약 상자는 마음약방에 대한 기대를 한층 올려놓는다.
이미 다 팔려 ‘SOLD OUT’이라는 푯말만 남겨진 상실 후유증까지 보고 난 후에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1,000원짜리 한 장을 넣고 변덕이 끓는 이를 위한 ‘마음 요요현상’과 늙어가고 있음을 치유해줄 ‘노화자각증상’을 차례로 선택했다. 윙~ 기계는 움직이고, 순식간에 단아한 매무새의 처방 상자가 손안에 들어왔다. -
드디어 개봉박두. 큼직한 상자에서 나온 것은 네가지의 종이처방이었는데, 서울시 홍보물과 다름없는 산책 지도나 그리 마음에 닿지 않는 영화 처방 등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포장 값만 해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상자에 큰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질소 가득한 과자봉지를 닮은 처방상자에 왠지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애당초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뭔가를 기대한 게 욕심이었을 수 있다. 증상에 따라서는 엿이나 비타민제 등이 들어있는 처방도 있다고 하니 내 운을 탓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잔뜩 올려놓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내용물은 아무래도 아쉽다. 차라리 약 상자에 표현해 놓은 증상만큼 재미있거나 공감 가는 문구가 들어있었으면 이처럼 실망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오히려 처방을 받고 마음이 더 고단해진 느낌이다. -
‘마음약방’은 서울문화재단이 진행하는 2015년 도시게릴라 프로젝트로 현대인이 느끼고 있을 보편적인 마음의 불편함을 20가지 병명으로 증상화해 그림 처방/영화 처방/글 처방/위트 있는 물품 등 다양한 처방을 제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나 취지에 비해 효과는 영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마음약방’.
마음약방 기부금은 현대인의 마음치유를 위해 다시 사용된다는데, 제발 내가 남긴 기부금이 속 빈 강정 같은 이런 처방이 아닌 진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에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글,사진= 김정아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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