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의 세상은 현실 세상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현실을 잊기도 하지만 현실을 위로받기도 한다. 한때 바보 상자라고 불리기도 했던 TV 프로그램에서 사람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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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소재의 고갈로 시달리는 드라마계의 돌파구로 여겨졌었던 퓨전 사극에 대한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몇몇 작품들이 기대 이하의 반응으로 막을 내리거나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 퓨전 사극들이 기대작이었던 이유는 전작에서 성공했던 감독이나 작가가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와 함께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설득력이 없는 뻔한 스토리의 문제일 것이다. 어차피 역사가 스포일러인 사극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까지 예측된다면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퓨전 사극마다 따라붙는 역사 왜곡의 꼬리표들. 실제 있었던 역사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역사에 존재했던 인물에 대한 과장이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주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
그런데 여기 영리하게도 그런 논란을 피해 가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는 퓨전 사극 한편이 등장했다. 바로 JTBC에서 매주 금, 토 저녁 9시 45분에 방송되는 ‘하녀들’이다. 제목만 들으면 영 사극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노비들’이 내용에는 가깝다. 그러나 노비보다는 하녀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더 야릇한 호기심을 당기는 건 사실이다.
사극에서는 매번 ‘역모죄’가 등장한다. 억울하게 역모죄에 몰려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갓난아이가 자라서 그 한을 푸는 이야기는 흔한 사극의 플롯 중 하나다. 그런데 “아녀자는 관비로 내쳐라.”는 대사 한마디로 사라졌다가 나중에 살아남은 주인공이 노비가 된 어머니를 찾아내는 식으로 생략되어버린 아녀자들의 인생은 어땠을까? 여태껏 대부분의 사극 주인공들은 남자였고, 여자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장부들이었다. 그래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 순식간에 노비로 전락해버린 양반댁 규수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하녀들’이다. -
조선 시대에 역모죄에 휩쓸린 집안의 여자들은 기생(관기)이 되거나, 관노비가 되거나 간혹 역모죄 발고에 공을 세운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다고 한다. 고관대작 집안의 규수로 서로 교류를 나누던 사이가 졸지에 주인과 노비 관계로 만나는 일도 충분히 있음 직한 일이다.
‘하녀들’에서는 아버지가 역모죄에 연루되면서 양반집 규수였던 인엽이 노비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양반이었을 때 너무나 당연하게 노비들에게 ‘갑질’을 하며 살았던 인엽이 자신이 사람이 아닌 노비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다. 같은 하녀들은 양반이었던 인엽이 탐탁지 않고, 한때 양반이었던 고운 인엽을 탐내는 사내들의 욕망은 노골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노비들의 삶을 그려낸다는 소재만으로는 총 16부작을 끌어가기에 충분치 않을 것이다. 주인공 인엽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나갈 수 있을지, 뻔하지 않은 전개로 끝까지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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