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의 세상은 현실 세상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현실을 잊기도 하지만 현실을 위로받기도 한다. 한때 바보 상자라고 불리기도 했던 TV 프로그램에서 사람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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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에서 재벌 2세, 그리고 외계인을 거쳐 다중인격까지… 이중인격 주인공과 다중인격 주인공이 등장하는 두 편의 드라마가 맞붙었다. ‘하이드 지킬, 나’와 ‘킬미힐미’다.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이기적이고 까칠한 성격의 주인공이 이타적이고 다정한 이중인격을 억제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그려진다. ‘킬미힐미’에서는 이중인격을 넘어 7가지의 다중인격이 시도때도없이 튀어나와 주(主) 인격을 위협한다.
비슷비슷한 소재가 반복되는 드라마 판에 신선한 소재는 늘 목마르다. 다중인격이라는 독특한 상황은 그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기에도 좋아 드라마 주인공으로는 제격이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늘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해 쉬이 비호감으로 여겨지던 여 주인공도 한 남자의 두 인격 사이에서 갈등하기 때문에 그런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인간은 끝없이 새로움을 욕망하고 다양한 것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우스갯소리로 예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못생긴 여자와 바람이 난다고 한다. 착한 남자와 연애하면서도 나쁜 남자에게 끌리고, 나쁜 남자와 연애하면 착한 남자가 아쉽다. 오죽하면 어장관리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되었을까. 물건은 원하는 종류별로 사면 되지만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처럼 여러 사람을 거느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연인이라니, 쉬이 만족 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은근히 자극하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가 연달아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킬미힐미’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1년여간의 기억이 없다. 단지 얼핏 드러난 꿈 장면에서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즈음에서 작년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괜찮아, 사랑이야’. 주인공이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환시(幻視)를 목격하는 내용의 드라마다. 독특한 소재로 이목을 끌었고 주인공의 상처에 깊이 공감을 했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로부터 학대를 경험했고, 살인과 방화라는 가족의 비극을 겪으면서 억눌려있던 죄책감이 환시를 만들었다. 이중인격, 그리고 다중인격이라는 설정은 정신질환이라는 차원에서 그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심리 상담의 기본은 유년시절을 되짚는 것에서 시작한다. 부모와의 관계, 가족 내의 분위기, 경험했던 주요 사건들. 어떤 경험을 통해 현재의 인격이 형성되었고 현재의 고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한다.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으로 극히 드물지만, 다중인격이 발병하게 되는 원인은 평범하지 않은 유년시절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유년시절에 받은 육체적 또는 성적 학대나,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끔찍한 사고의 목격 등 정신적 외상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즉, 로맨스 코미디로 발랄하게 그려지기에는 절대 가볍지 않은 소재다.
물론 다중인격까지는 아니어도 유년시절에 겪은 나쁜 경험으로 인해 비뚤어진 주인공이나 악역들이 드라마나 영화상에 종종 등장하기는 했었다. 다중인격을 다루는 드라마가 신선하고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 과정에 아동 학대가 너무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것은 우려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대두한 사건 또한 어린이집 학대 문제다.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아직 주인공의 이중인격의 원인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부디 이 주인공은 아동학대를 경험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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