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네팔 여행기] "오랜만이야" 6년 만에 다시 만난 네팔

기사입력 2015.01.13 10:32
20대의 마지막을 바라보던 어느 날, 11박12일의 시간을 내어 네팔로 떠났다. 볼거리 가득한 유럽도, 먹을거리 가득한 동남아도 아니고, 웬 네팔이냐고? 히말라야를 정복하고 싶은 것도, 일탈을 꿈 꾼 것도 아니다. 대학교 때 봉사활동을 하며 5개월간 살았던 네팔. 그리운 사람과 장소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네팔에 머물렀던 2008년과 2014년 현재. 지난 6년간 그곳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행을 마칠 즈음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을 담아오게 될까.
  • 문 밖에 나서면 히말라야가 눈앞에 펼쳐지던 꿈같은 시절이 있었다. 홈스테이하는 집 옥상에 올라 탁 트인 하늘을 배경 삼아 노트북으로 영화를 즐기던…. 하지만 뜨거운 햇볕을 피하지 못해 엄청난 주근깨를 얻었더랬다. 국내의 한 NGO 소속 봉사단으로 네팔의 국립학교(Narayan Jan Secondary School)에서 교육 봉사활동을 하던 2008년 얘기다. 당시 5개월의 활동을 마치고 떠나면서 ‘아이들이 날 잊기 전에 꼭 다시 오리라’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로부터 6년 후, 불현듯 ‘아이들이 날 잊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으로 아이들이 언제 네팔에 오냐고 물을 때마다 ‘당장 짐을 싸지 않으면 산띠(Shantii : 네팔에서의 내 이름. ‘평화’라는 의미) 널 잊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다달이 붓던 적금을 이번 달엔 과감히 접기로 하고 카트만두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 (왼쪽)상공에서 내려다 본 네팔의 모습. 빽빽한 산과 고불고불한 길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네팔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의 모습. 짐을 찾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 오은영
    ▲ (왼쪽)상공에서 내려다 본 네팔의 모습. 빽빽한 산과 고불고불한 길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네팔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의 모습. 짐을 찾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 오은영
    "산띠! 여기야"


    건너편에서 비파나, 라츄, 사비따 세 친구가 손을 흔든다. 내가 봉사활동을 할 당시 9학년이었던 아이들이 스무살 어엿한 숙녀가 되어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와 교복은 어디로 가고, 반곱슬 머리를 길게 풀고 세련된 청바지를 입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공항까지 나오냐며 걱정하던 내게 “우리 이제 다 컸다”고 하더니 정말이구나.

  • 카트만두 껄렁끼(Kalanki)의 모습. 중앙선 없는 도로 위엔 길을 건너려는 사람과 버스, 택시, 템포 등 각종 교통수단이 가득하다.
    ▲ 카트만두 껄렁끼(Kalanki)의 모습. 중앙선 없는 도로 위엔 길을 건너려는 사람과 버스, 택시, 템포 등 각종 교통수단이 가득하다.
    “남자는 앙~대요!” 네팔 버스에서 마주한 신세계


    그림 버스 내부의 여성전용 좌석. 무릎을 꼰 여성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림 노약자 전용 좌석.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웠던 이곳,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가 머물었던 마을인 맞체가웅(Machchhegaun)으로 가는 버스에서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쉴 새 없이 덜컹거리는 버스, 목을 콱 막히게 하는 흙먼지와 매연, 귓전을 때리는 경적소리, 중앙선 없는 도로에 사람과 차가 뒤섞여 있는 모습, 여전하구나…. 회상에 잠겨 있던 그때 차장(네팔은 버스의 차장이 돈을 직접 받는다)이 할머니가 버스에 타자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보고 뒤로 가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남학생은 멋쩍은 듯 뒤로 자리를 옮긴다. ‘아, 경로 우대구나’라고 생각하려던 순간, 옆자리에 앉은 비파나가 여기 앞 좌석 4개가 여성 전용이라 그렇단다. 가만 있어보자. 여성 우대? 네팔 버스에 여성 전용 좌석이 있다고?

  • (왼쪽) 버스 내부의 여성전용 좌석. 무릎을 꼰 여성의 모습이 눈에 띈다.
(오른쪽) 노약자 전용 좌석.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왼쪽) 버스 내부의 여성전용 좌석. 무릎을 꼰 여성의 모습이 눈에 띈다. (오른쪽) 노약자 전용 좌석.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비파나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왼편에는 무릎을 꼰 여성 모양의 그림이, 오른편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의 그림이 있다. 뭐지? 눈이 휘둥그레진다. 6년 전엔 이런 게 없었지 않느냐 물으니, 지금은 버스마다 여성 전용좌석이 있고 맞체가웅 버스에도 있단다. 이 표지를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나를 버스에 탄 사람들은 오히려 별걸 가지고 유난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 여성우대 좌석! 대한민국에도 없는 버스 여성 전용 좌석이 이곳에 있다니 놀랍다.

    별빛이 밤을 밝히던 맞체가웅, 지금은….


  • 내가 머물었던 맞체가웅의 모습. 구름이 걷히면 저 멀리 히말라야가 보인다.
    ▲ 내가 머물었던 맞체가웅의 모습. 구름이 걷히면 저 멀리 히말라야가 보인다.
    탁한 공기가 맑아지자 크게 한숨을 들이켜 본다. 이따금씩 꿈에 나와 내 맘을 괴롭혔던 이곳, 맞체가웅에 도착했다. 흙먼지 가득한 카트만두의 오아시스와 같은, 문을 열면 히말라야를 마주할 수 있었던 바로 그 곳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한한 사랑과 관심도 받고, 현지인 텃새에 속앓이도 꽤나 했던…. 어둑해지는 시간이지만 회상에 잠기며 마을길을 나선다. 기억 속 이곳은 밤이 되면 불빛이 없어 별빛이 길을 밝히는 곳이었다. 까만 밤하늘을 장식한 별지도가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었다. 지금도 여전할까.

    그런데 웬걸, 공터였던 곳마다 상점이 들어서서 이젠 전등이 밤을 환히 밝힌다. 상점 종류도 슈퍼마켓, 주류 가게, 화장품 상점 등 다양하다. 길을 함께 나선 비파나는 이 마을에 버섯농장도 생기고, 닭농장도 생겼다며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비파나에게 왜 이렇게 상점이 많이 생겼냐 물으니 본인도 모르겠다는 답변만이 돌아온다. 마을에 상점이 여럿 들어섰으니 분명 발전한 걸 텐데…. 어쩐지 나는 추억 조각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싸하다.


    “아직도 몰랐니?” 한국 연예계 소식을 네팔 마을에서 듣다


    1층에 염소가 살아서 놀러갈 때마다 빈대가 옮을까 노심초사 했던 사비따네 집은 지금은 현대식 건물로 이사를 가 찌야(Chiya : 네팔 차)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비따는 금세 따끈한 찌야를 한잔 내어준다. 그러면서 익숙한 듯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켠다. 앗, 근데 삼성 스마트폰이다. 비파나의 손을 보니 역시 삼성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삼성 스마트폰에 반가움을 표하려던 찰라, 귀에 익은 가요가 들린다. 아니, 이는 한국 가요가 아닌가! 사비따에게 물어보니 김현중의 노래란다. 스마트폰 음악 목록을 보니 태반이 한국 가요다.


  • 비파나의 방에 붙어있던 가수 김현중의 포스터. 맞은편 책장에도 여러장의 사진이 붙어있다.
    ▲ 비파나의 방에 붙어있던 가수 김현중의 포스터. 맞은편 책장에도 여러장의 사진이 붙어있다.
    사비따
    “문근영이랑 김범이랑 사귀었는데 지금은 헤어졌잖아”



    “아 그래? 어떻게 알았어?"


    사비따
    “인터넷으로 알았지, 몰랐니?”



    한국 가요를 배경으로 스무살 아가씨들은 한국 연예계 소식을 주제로 한창 수다를 떤다. 그러면서 김현중이 여자친구를 때렸다고 하던데 진짜냐고 내게 묻는다. 믿을 수 없다는 슬픈 표정이다. 하지만 연예계 소식에 둔한 나는 “그 두 사람만이 알거야”라고 답했을 뿐 딱히 자세히 답해줄 수가 없었다. 아, 여기는 네팔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국에서도 안 듣던 한국 가요와 최근 연예가 소식을 네팔 마을에 와서 듣다니…. ‘K-POP 열풍’이라는 말을 뉴스에서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네팔에 온 첫날은 한국 가요와 함께 저무는구나.


  • 강산이 변할 6년, 네팔 마을에서도 ‘안 되는 게 없네’!


    네팔에 오기 전 걱정했던 몇 가지가 있었다. 바로 씻는 문제와 화장실 문제. 애초에 친구가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했을 때 흔쾌히 ‘OK’ 하지 못했던 이유다. 결국 왜 우리집을 두고 호텔에 묵으려 하냐는 거듭된 초청에 비파나네 집에 묵기로 했지만 화장실 걱정은 떠나지 않았다. 네팔은 물로 뒤처리를 하기 때문에 휴지는 물론, 휴지통도 있을 리 만무. 더군다나 예전에 홈스테이 할 때 변기에 휴지를 넣었다가 꽉 막혀버려서 선생님 내외를 참으로 당혹스럽게 했던 경험이 있던 터였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비파나가 화장실이라고 가리키는 곳을 걱정을 한 아름 안고 따라간다.

    덜컹. 문이 열린다. 오! 양변기에다가 옆에 휴지도 달려있다. 시범삼아 양변기에 휴지를 넣고 물을 내려보니 아주 잘~내려간다. 만세! 한국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화장실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네팔에서도 휴지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까? 차마 휴지의 용도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지만 비파나네 머무는 4일간 화장실 문제는 걱정 없었다. 다만 씻는 문제는 빼고. 공용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다 물이끼에 미끄러져 발등에 꽤 큰 상처를 입었다.

  • 가운데 작게 보이는 것이 공용 수돗가. 마을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나와 이곳에서 씻는다.
    ▲ 가운데 작게 보이는 것이 공용 수돗가. 마을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나와 이곳에서 씻는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가족과의 연락 문제였다. 내가 마을에 살 당시엔 인터넷을 하려면 동네 PC방에 가야 했고, 전화를 하려면 전화 가게에 시간당 얼마를 내고 이용해야 했다. 와이파이는 여행자 거리인 타멜(Thamel)의 큰 카페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TV를 통해 본 빈곤한 네팔의 모습에 내가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지내는 줄 알고 계실 텐데…. 밑져봐야 본전. 설마, 혹시 하며 스마트폰의 와이파이를 켜본다. 그런데 앗! 이것은 와이파이?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이다. 비밀번호가 걸려있긴 하지만 몇 개의 와이파이가 뜬다. 잠시 숨을 고르고 묻는다.

    “비파나, 혹시 와이파이 되니?”


    내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비파나는 비밀번호를 눌러 와이파이를 연결해준다. 아. 된다. 세상에 카카오톡이 된다. 쾌재를 불렀다. 그것도 아주 빵빵하게 잘 터진다. 덕분에 난 마을 도착 첫날부터 무사 도착 인증샷을 보내 부모님의 걱정거리를 덜어드리는 작은 효도(?)를 할 수 있었다. 네팔의 마을에서 만난 와이파이. 흥분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6년 전엔 우리집에도 와이파이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6년이면 강산이 변할 시간인데 내가 너무 오래 전 마을만을 기억하고 있었나.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니건만 괜스레 멋쩍어진다. 어쨌든 인터넷으로 한국과 연결되었다. 야호!